02. 집

- 귀하의 주택전세자금대출 기한연장 처리를 완료하였습니다.

by 박지각
1993년 2월 9일(화)



1993년, 아버지는 서른여덟 살이었고 어머니는 서른여섯 살이었다. 그 해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려본다. 아버지는 직장인이었고 어머니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어린 두 딸이 있었고, 주택담보대출을 받긴 했지만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었다.


2023년, 서른여섯인 내가 가진 것을 생각해본다. 아무것도 없다.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아이는 없고, 직장은 있지만 집은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월세에서 전세로 갈아탔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언젠가 엄마와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었다.


“엄마. 엄마랑 아빠는 지금 내 나이에 집도 있고, 가게도 있고, 자식도 있었잖아. 근데 왜 나는 아무것도 없지?”

“그때랑 지금이랑 같니. 그때는 하면 하는 만큼 버는 시대였지. 지금은 젊은 애들이 살기 너무 힘든 세상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줘서 고맙다는 말 대신,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다행이야.”


만약 아버지가 듣는다면 서운해 하겠지.


최근 아파트 전세 대출을 연장했다. 집은 한 채인데 대출은 두 건이라 은행 일도 두 번 봐야했다. 대한민국 직장인이 은행에 가야한다는 것은 꽤 수고로운 일이다. 디데이를 정하면 먼저 직장에 반차를 내야 한다. 다음엔 은행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미리 방문 예약을 해야 한다. 시간과 에너지를 쓸데없이 낭비하거나 헛걸음 하지 않으려면 필요한 서류도 두 번, 세 번 꼼꼼히 확인하며 준비해야 한다.


필요 서류로는 전세 계약을 연장하면서 임대인과 새로 쓴 전세계약서와 등기사항전부증명서,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재직증명서, 소득금액증명원,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고용보험 피보험자격 이력내역서 등이 필요하다. L 홀더 파일 겉면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서류 이름 앞의 네모 칸을 그리고 챙긴 서류를 확인한 뒤엔 브이 체크를 하며 준비했다.


내게 주어진 번호표는 903번이었다. 박○○이 아닌 903번으로 불리며 행원 앞에 앉았다. 행원은 내게 신분증을 요구했고, 나는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중에 짧게 고민하다 주민등록증을 건넸다. 행원이 내 신분증을 보며 키보드로 내 주민번호를 입력했다. 머지않아 행원은 고개 한 번 갸웃하고, 눈을 가늘게 뜨며 모니터에 집중했다. 그녀의 고갯짓 한 번에 내 마음은 쿵 하고 내려 앉았다.


‘설마 내 계좌 잔고를 믿을 수가 없어서 저러나.’

‘아님 계좌 잔고보다 대출이 몇 배나 많은 내 현실을 믿을 수 없어서?’


찰나의 순간에도 내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아랫입술을 물어뜯으려던 그 때, 행원이 내게 서류를 달라고 말했다. 나는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서 숙제를 제출하는 아이처럼 나름 뿌듯하게 L홀더 째로 서류를 건넸다. 행원은 L홀더 안의 서류를 착착 넘겨가며 보더니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내 마음도 같이 들썩거리는 순간이었다.


“준비를 잘하셨네요.”


행원이 L 홀더와 함께 건넨 한 마디에 들썩이던 내 마음도 착 가라앉았다. 다행이다 싶었다. L 홀더를 받아 챙기는데 홀더 겉면에 붙여뒀던 체크리스트 포스트잇이 눈에 띄었다. 뿌듯함과 동시에 민망함이 몰려왔다. 전세 대출 연장에 목숨 건 사람처럼 보였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행원이 건넨 몇 가지 서류를 썼다. 이름 옆의 (인) 부분에 내 이름을 다소 흘려 쓸 때면 나도 이제 나도 어른이 됐나 싶다. 그렇게 몇 번 내 이름을 흘려 쓰고 서류를 다시 행원에게 건네면 은행 일은 끝이 난다. 일주일 뒤 전세 대출 연장이 승인되었다고 메시지를 받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금 집에 계속 살 수 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전세보증보험이라는 다음 단계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2년마다 한 번 해도 지치는 이 일을 아버지와 어머니는 몇 번이나 해냈을까. 과연 몇 번을 해내면서 집과 가게를 마련해낸 걸까. 어두운 밤, 침대와 책상이 거의 맞붙을 정도로 좁은 기관장실에서 항해일지를 쓰고, 그 아래에 급여 명세를 정리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사대보험과 각종 세금을 떼고 남은 얼마 안 되는 금액에서도 쓸 수 있는 돈과 쓸 수 없는 돈을 나눴을 것이다. 월급날이면 카드값과 전세 대출 이자, 학자금 대출 상환금, 생활비 등을 계좌마다 나눠놓는 나처럼 말이다.


아버지는 월급의 대부분을 집으로 보냈다. 그럼 어머니는 대부분의 돈을 대출을 갚는데 썼다. 그렇게 대출을 다 갚을 즈음 살던 집을 팔았다. 집을 팔아 마련한 목돈과 대출을 더해 다음 집을 샀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는 동안 집은 조금씩 커졌고, 언니와 나는 사춘기에 접어들었으며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은 더욱 바빠졌다.


2003년, 아버지가 투병을 시작했고 우리는 살던 집을 팔았다. 2004년, 아버지는 우리가 살던 집보다 더 큰 집을 샀다. 투병에 집중해도 모자를 판에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당장 이사할 수도 없는 집을 왜 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듬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산 집은 작은 상가주택이었다. 1층에 가게가 있고, 몇 채의 원룸이 있어 작지만 매달 월세를 받을 수 있는 집이었다. 남편을 잃은 떠나보낸 상실감으로 엄마는 10년 정도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먹고 살 수 있었던 건 그 ‘집’에서 나온 월세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우리를 먹여 살려온 거다. 아버지의 인생에서 가장 큰 집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단 하루도 살아보지 못한 그 집으로 말이다.


은행에서 나오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대출 연장이 잘 될 것 같다는 말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처분하면 언니, 너, 나 이렇게 삼분의 일로 공평하게 나눌 거야. 그 때 되면 그 돈으로 작은 아파트라도 사. 집은 한 채 있어야지.”


엄마의 말에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만약 그렇게 집을 마련한다면, 훗날 내가 아이라도 갖게 된다면, 아버지의 집은 나와 나의 아이를 위한 집이 되겠구나.’ 순간 아버지의 집이 거대한 물방울처럼 다른 집의 모양으로 변하는 상상을 했다. 아버지의 집은 나의 집으로, 또 내 아이를 위한 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버지는 집이라는 이름으로 모양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나를 감싸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어머니와 아버지보다 더디게 살고 있는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떠한 사물로, 또 유산으로 남겨질 수 있을까.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로 기억될 수 있을까. 생각하다보니 불현듯 최선을 다해 살고 싶어진다. ‘나’로 상징되는 아주 작은 무언가라도 세상에 남기기 위해, 부디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야 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