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문득 덧 없게 느껴진다면

by 김파도

삶이 문득 덧없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이미 ‘나’라는 존재의 위기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당신은 왜 존재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과연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

흔히 말하듯, 존재의 위기는 삶의 신념, 가치관, 목표가 흔들릴 때 찾아온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존재의 위기는 더 깊은, 개인적인 균열에서 비롯된다. 나보다 잘난 사람을 볼 때, 내가 가진 것이 누군가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질 때, 그 열등감이 내 안의 ‘나’를 부정하게 만든다. 현실의 나와, 이상 속의 내가 충돌하며 생기는 고통. 그것이 바로 존재의 균열이다.


신은 우리에게 유한한 시간을 주셨다. 그 안에서 우리는 무한에 가까운 삶을 꿈꾼다. 문제는 시간이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졌다는 그 시간은 실상, 절대로 평등하지 않다.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났더라도 누군가는 풍요 속에서, 누군가는 결핍 속에서 살아간다. 시간은 흐르지만, 삶의 조건은 다르다. 절대적인 시간은 사람 앞에서 잔인한 심판자가 되곤 한다.


당신이 “시간은 공평해, 노력하면 다 돼”라고 생각한다면, 아마 당신은 사랑 혹은 물질 중 적어도 하나는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다. 그 둘 중 하나라도 손에 쥐고 살아가는 삶은 풍요롭다.

인간은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은 인간을 살게도 하고, 무너지게도 한다. 풍요로운 이에게 꿈은 실현 가능한 현실이지만, 빈곤한 이에게 꿈은 때로 고통스러운 환상이다. 그 간극을 메우는 유일한 가능성은 '재능'과 '부모의 지혜' 정도다. 그것마저 없다면, 사람은 현실의 벽에 갇혀 살아야만 한다.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꿈이 있고, 땅만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하루가 곧 생존이다.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살아내는 일 자체가 고통인 이들도 있다. 그렇다.우리는 이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풍요 속에 산다면, 겸손하라. 그건 전적으로 당신의 노력만으로 얻은 결과가 아니다. 빈곤 속에 있다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하라. 그 위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인간은 생각하고, 상상하고, 비교한다. 그래서 비참해진다. 나는 이 감정의 뿌리를 '열등감'이라고 부르고 싶다. 인간은 열등감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 존재의 위기에 빠져든다. 그것은 원죄처럼 인간 안에 각인된 본성이다.


인간이 존재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자신이 가진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다. 망상이 아닌 가능한 삶을 살아내라는 뜻이다.

내가 가지지 못할 것을 좇지 말고,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을 향해 걸어라.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중하라. 남의 인생을 부러워하기보다, 내 인생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쓰자. 오늘 먹을 양식이 충분하다면, 누군가와 나눠보자. 생각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져 있다면, 신 앞에 서서 스스로를 성찰하자.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존재한다. 그러니 오늘을 살아라. 오늘은 당신이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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