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좋아하는 이유,
몸은 정직하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8월 2일부터 9월 30일까지 PT 15회를 충실하게 지속해 왔으며, 수업이 없는 화요일에는 다른 일정이 끝난 뒤 헬스장에서 40분을 트레드 밀 위에서 빠르게 걸었고,
토요일이면 집 근처 산행으로 2시간 정도를 빠르게 걸었다.
PT 수업은 보통 월, 목 이렇게 인데, 수업이 끝나면 유산소로 20분씩은 운동을 더 했고,
집에 돌아와서도 이런저런 스트레칭에 코어운동까지 더 했다.
잘 먹어야 한다고 해서, 운동을 마치면 잘 넘어가지도 않는 닭가슴살을 먹으며 목이 메이다가
당근라페를 만들어 곁들여 먹으니 훨씬 좋길래,
9월부터 당근라페는 냉장고에서 떨어지지 않는 메뉴가 되었다.
그래서 인가, 9월 말 산행길에는 스스로 다리 근육의 힘을 느끼며 뿌듯해했더란다.
분명, 눈으로 봐도
드라마틱한 변화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낄만했다.
10월 2일 16회 차 PT 수업을 하기 전,
이 모든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며 인바디를 쟀다.
근육은 얼마나 늘었을까, 체지방은 얼마나 빠졌을까?
기대와 설렘으로 나는 인바디 성적표를 보기 전까지
빙긋빙긋 웃음을 웃고 있었는데,
이상하다, 인바디 인쇄물을 들고 있는 PT 선생님의 표정이 좀 굳어 있다.
갸우뚱.
"근육량이 지난번 보다 줄었는데요?"
응? 잘못 들었나?
"00님이 이제까지 운동을 꾸준히 해 오셨는데, 좀 이상한데요.
저녁에 뭐 드셨어요?"
"음.. 밥에 반찬을 먹었죠."
"인바디는 식사에 따라서도..... 블라블라..."
정확한 기술을 하자면
체중은 +0.2, 골격근량은 -0.6, 체지방량은 +1.2!
키우고자 했던 골격근량은 빠지고
빼고자 했던 체지방량은 올라간 반전 결과라니!
숫자 얼마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맘먹고 시작한 운동이긴 하지만,
내심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라는 것이 속이 쓰리긴 했다.
맥이 툭 풀렸다.
그렇다고 울상으로 수업을 말아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운동 세트 중간 휴식시간마다 PT선생님이 평소 식사를 어떻게 하냐며, 블라블라...
생각의 끝에 다다른 결론은 다음과 같다.
PT선생님의 결론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내린 점검이자 결론이다.
첫째, 운동의 강도가 약했을 가능성.
PT선생님이 나의 상태를 보면서 줄 량이나 횟수, 운동의 종류를 결정해서 수행하도록 안내를 했는데,
나의 지나친 겸손?으로 내가 해야 하는 적정 무게나 횟수보다 덜 했을 가능성이 있다.
수업이 끝나고서도 몸은 여전히 가벼웠기에, 트레드 밀을 사뿐히 걷고
집에 돌아와 다른 운동을 했던 거 아닐까?
아예, 초주검이 되어서 겨우 집으로 돌아오는 상황이어야 했나?
둘째, 운동 시간에 비해 휴식이 많았을 가능성.
첫 번째랑 이어지는 내용이긴 한데, 헬스에서는 한 세트하고 나면 쉬고, 한 세트 하고 나면 쉬고, 그 사이에 PT 선생님과 이런저런 수다로 시간을 많이 보냈다는 건 분명하다.
필라테스 개인 레슨 선생님은 그야말로 운동의 흐름이 계속되는 가운데,
결국 견디다 못해, 내가 먼저 "선생님, 잠깐만 쉬었다 할게요." 타임 아웃을 요청하면
그때 숨 고르기 시간 1분 정도가 고작이었었다.
셋째, 나는 먹는 것을 늘렸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식사량(단백질 포함)은 모자랐을 가능성.
이건, 인바디 측정 후에 PT선생님이 집요하게 나의 아침, 점심, 저녁, 간식을 물어봤고 그에 답을 하다 보니 드러난 것이다. 좀, 적게 먹기는 하네요.... 근데 여태껏 그렇게 먹고 잘 살아오긴 했는데요.....
나이 50대면 소식을 해야 한다고 하고,
야채 위주의 식사를 해야 한다고 하고,
액상과당 잔뜩있는 단음료를 멀리해야 하고,
흰쌀밥, 빵, 면, 떡 등 정제탄수화물은 먹지 말이야 한다(라고 쓰고, 줄여야라고 이해합니다)고 하고,
설탕, 밀가루, 나트륨, 튀김 음식도 먹지 말아야 한다고 하고.
가끔은 오토파지를 위해서 간헐적 단식을 해주면 좋다고 하고.
그래서 위의 규칙이 적용된 나름의 깨끗하고, 단순한 식단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나이 50 이후에도 체중 50, 51 언저리를 유지한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하고 살았기에, 먹는 것에 대한 증량은 기꺼운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줄어드는 근육량을 붙잡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고, 애써 먹었는데
PT선생님은 "그래도 부족해요!"라고 결론지었다.
그래, 먹는 게 부족해서 근육이 늘지 않았다(기록상으로는 줄어들었다)고 치고,
늘어난 체지방량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또 하나의 가능성은, 몸은 정직하지만
인바디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거.
(그래도 기계가 얼마나 틀리겠냐만.)
그래서, 거울을 보면, 늘어난 체지방은 필시 이쯤에 붙어있겠구나 싶은 부위가 있긴 하다.
기계는 잘못이 없다.
이제, 오늘 글의 끝을 맺고자 한다.
조금 우쭈쭈 하는 기분에 헬린이의 들떴던 마음은 가라앉았고,
"역시나 운동은 이런 기록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오늘도 운동을 하는 내 머슬 메모리, 내 의지, 내 땀과 호흡, 집중력이 중요하다는 것.
사실, 진정한 보상은 이런 것 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괜한 숫자 비교로 본질을 흐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