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멀찍이서 한 남자가 보였다. 몸집도 있고, 건장한 편인데, 머리는 희긋하고 나이 들어 보이는... 아저씨인가?
가까이 올 수도록 아저씨라기보다는 노년의 어르신 같은 외모였다.
사실 얼굴보다도 눈을 사로잡은 것은 옷차림이었다. 파스텔톤의 연둣빛 바탕에 노란색, 분홍색, 파란색 세모 네모 동그라미가 점점이 박혀있는 위아래 파자마 한 세트를 맞춰 입었고, 발에는 흰 고무신.
산에 오가며, 그 사거리 근처에 병원이 하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묘하게도 병원이름이 (실명은 밝힐 수 없음) 저승이라는 말과 비슷해서, 늘 그 병원을 지날 때는 하필이면 많고 많은 이름 중에 저 이름일까를 생각했던 차였다.
눈이 좋지 않아서 멀찍이서 병원이름을 보고, 처음에 저승이라 착각하고 얼마나 놀랬었는지 모른다!
일반 종합병원은 아닌 것이, 뭔가 번화한 주택지에서도 떨어진 병원이라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아마 어르신들을 모시는 병원이 아닌가 생각했던 차였다.
자, 그러니, 나의 추리 퍼즐은 쉽게 맞춰졌다.
병원이 답답한 어르신이 잠깐 바람 쐬러 나오셨구나, 아침 7시에. 그럴 수도 있지.
산의 초입을 한참 걷고, 산둘레에 만들어놓은 무장애 데크길을 걸어가다가, 다시 또 같은 어르신을 마주쳤다.
아! 여기까지 오셨네!
그럼, 혹시!
순간 떠오르는 한 권의 책이 있었다.
The hundred -year -old man who climed out of the window and disappeared.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스웨덴 작가의 작품인데, 영어로 번역된 것을 읽었다. 가히 작가의 상상력에 요절복통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100세 노인의 창문 넘어 도망친 이후의 모험과 100세가 되기까지 살아온 그의 인생을 씨줄, 날줄로 엮어 놓았는데, 노인의 탈출 이후 여정은 잔혹 코미디와 서스펜스 모험담 같고, 살아온 이야기는 퓨전 역사극 같은 기분이었다. 아, 거기다가 로맨스도 빼놓으면 아쉽지.
그렇다고 마냥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가 살아온 날들과, 요양원 탈출 후에 만나는 사람들과 사건들이 인생이란, 사람과의 관계란, 역사 속의 작은 개인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주는 무게감도 있었다.
책도 어느 한때 유행처럼 베스트셀러로 빛을 발하다 사그라지기도 한다.
이 책이 한창 인기 끌던 시절, 유명세를 치르고 지금은 지나간 과거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지금 꺼내 보아도 충분히 재미와 유익함이 있을 만한 책이라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