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점선면 Nov 25. 2024

펼쳐지지 않는 책

한밤중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이李씨(이하 이): 올해 중 3 담임을 맡은 친구들 중에, 독특한 여학생이 한 명 있어. 우여곡절 끝에 4월 말에 종합심리검사를 하고, 결과를 받았는데, 경계성 지능 혹은 경도의 지적장애라는 판정이었어.


또, 우여곡절 끝에 11월 13일, 그 학생이 고입 특수교육지원대상자로 가결되었다는 특수학급 선생님 메시지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가, 선생님께 감사하다면서 눈물 훌쩍했어. 어머니도, 해당 학생도 아닌 내가 감사하다면서 울고 있었네.


가 닿을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 질문과 대답으로는 좀처럼 알 수 없는 마음과 생각으로 홀로 외떨어져 살아가는 그 친구를 생각하다, 오늘 책이 떠올랐어.


오늘 책의 주인공은 15세의 자폐증 소년이야.

수학과 물리에 뛰어나고 기억력도 좋지만 다른 사람과 접촉을 어려워하고, 자신의 계획과 다른 상황을 견디지 못해서 공황 상태에서 이상 행동을 해.


소설은 이 소년, 크리스토퍼  Christopher가 화자이기 때문에, 소설 속 다른 주변 인물들과는 다르게 독자들은 크리스토퍼의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지.  소설의 흐름만 보면, 크리스토퍼는 비록 다른 이들의 눈에는 이해되지 못할지라도 독자들에게는 펼쳐진 책과 같아서 말이야.


점선면(이하 점): 자폐청소년의 내레이션인데, 그럼 일반인들과 뭔가 다른 점이 있는 거야?


: 그렇지는 않아. 조금 혁신적인 기획이었다면, 크리스토퍼가 느끼는 자극이 일반인들보다도 크다고 했을 때, 글자가 몇 배가 커진다거나 하는 식의 전통적인 책의 편집과는 다른 뭔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냥 평범한 편집이야. 자폐청소년의 정신세계이지만, 나름대로의 논리와 흐름이 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이 소설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지.


실제 이들의 마음과 머릿속은 소설처럼 질서 정연하고 논리적인 서술이 아니라, 어쩌면 일종의 추상화와도 같지 않을까?

아니, 나름 질서가 있는데, 보이는 모습의 맥락의 일부만을 볼 수 있을 뿐이기에 일 년 여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여전히 그 학생을 볼 때마다 미스터리한 것은 아닌가?


: 소설로 돌아와서 얘기해 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라는데, 그것과 크리스토퍼무슨 연관이 있는지.


: 크리스토퍼는 이웃집 부인의 개와 잘 지냈거든. 그런데, 어느 날, 크리스토퍼는 그 개가 죽어있는 것을, 그것도 쇠갈퀴에 찔려서 마당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해. 크리스토퍼는 이 사건의 범인을 자신이 직접 찾아내겠다는 다짐을 하지. 이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나선 바람에 아버지에게 꾸지람받고, 경찰서에도 끌려가고, 사람들은 크리스토퍼를 감당하기 어려워하고! 첩첩산중이야.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논리로 범인을 추측해 보고, 그를 뒤쫓으려 하는데, 이런! 너무나 의외의 정보를 얻게 돼.

그가 의심하는 시어즈 씨(개의 주인 되는 여자의 남편)가, 자신의 어머니와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는 것.

이미 자신의 어머니는 사망한 줄 알고 있었는데, 런던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것.


: 뭐야, 청소년 소설이라 생각했는데, 어른들의 불륜이라니! 15세 주인공에게 너무 가혹한 거 아니야?


: 우리 인생에 가혹한 일이 나이가 어리다고 피해가지는 않잖아. 이 일련의 충격적인 상황과 사실을 두고, 주인공 크리스퍼는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기로 결정할까, 궁금해지지. 소설의 나머지 부분은 그 이야기야.


우리 각자의 인생이 한 권의 책이고, 각자는 그 책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보자.

오늘날, 내가 대하는 책들은 어떤가?

아직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쓰일 가능성을 가진 지금의 10대들.

그렇다.

지금 내가 보는 것만으로 쉽게 판단 내리지 말자라고... 스스로 얘기해 본다.

영어 속담에도 있잖아.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다시, 내 학생으로 돌아와서, 나는 닫혀있는 책을 펼칠만한 자가 아니기에 그저 책의 표지와 책등과 사이즈를 보면서 가늠해 볼 뿐이라는 걸. 인정해야겠어.


: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고는 생각마. 여전히 너는 따뜻하게 책을 감싸 안을 수도 있고, 찬물을 엎질러 책을 망가뜨릴 수도 있어. 너는 옳고 좋은 일을 선택해야 해. 그러면 되는 거야.


: 그렇다. 그렇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있는 거였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