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습니다. 머릿속에는 수필가 최민자 님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모든 글쓰기 대가들의 글이 그러하듯 그녀의 글이 오랫동안 나의 머릿속에 머물며 피곤한 육체를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한 것은 부러움과 넘을 수 없는 벽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SNS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 혹은 물질을 뽐내는데, 저는 뜻하지 않게 멋진 글을 만나면 느슨해진 저를 깨우는 것 같아 좋습니다.
에세이는 소설과 시와 달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라고 말하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쉬운 장르라고 해도 수필가 최민자의 에세이를 읽고 나면 정말 쉬운 장르일까 의문스럽습니다.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좋은 도구라고 배웠던 시절은 너무나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오히려 스트레스로 부담을 느끼기도 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브런치에서 "너 일주일에 2번 글쓰기로 했는데 왜 글이 쓰이지 않았어" 하는 경고성 문자를 받으면 일부러 외면하며 문자를 지워 버리기도 하는 것이 그러한 이유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 책을 10권도 더 쓴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 경험을 글로 썼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울그락불그락 감정을 담아 말을 하며 상대의 감정을 외면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말로 만남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을 장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올바른 소통을 우리는 배우며 성장하지 않아 상대의 감정을 이해 못 하고 일방적으로 자기 말을 하는 행위가 소통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듣는 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귀가 입과 달리 두 개 있는 이유도 그러할 것입니다.
글 쓰는 것은 말과는 달리 생각을 많이 하게 합니다. 로댕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
학창 시절 친구는 깊은 사색에 빠져 있는 조각상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아... 휴지가 없네."누구에게 어떻게 연락할까?
급하게 뛰어 들어간 화장실에 이미 볼일을 보는 중 늦게 알아차린 황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