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5/2024
안녕?
지금은 막 밤 12시가 되기 직전이야. 사실은 퇴근을 하고 편지를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어제도 그랬던 건 안 비밀..ㅎㅎ) 어제 이를 닦다가 예전에 커뮤니티 컬리지 다녔을 때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어. 어떤 섬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은 나무가 굉장히 소중한 자원이었대. 나무로 카누를 만들어서 바다에 나가서 물고기도 잡아왔지. 나무는 커다란 돌 조각상을 세우는데도 사용됐어. 돌을 운반할 때 바닥에 깔아서 롤러로 쓴 거야. 그런데 섬사람들이 이 커다란 조각상을 만드는데 경쟁이 붙어버린 거야. 그래서 너도 나도 누구보다 더 큰 조각상을 세우는데 열중하다가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빨리 나무를 잘라 버려서 더는 카누를 만들 나무가 없어져 버렸대. 그래서 결국 멸망해 버렸다는 이야기.
너는 이미 알고 있었을 수도 있는데, 이게 내가 처음으로 자세하게 들은 이스터 섬 이야기였어. 문명은 멸망해 버리고 기괴하게 모아이 상만 남아 있는 섬 말이야. 수업에서는 우리 지구를 이스터 섬에 비유하고 있었어. 이스터 섬을 아주 작은 지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망망대해에 외로이 떠 있는 이스터 섬이랑 우리가 아는 한 우주에서 유일하게 지적인 생명체가 사는 행성인 지구랑 상황이 아주 비슷하지. 우리의 모아이 상은 높고 높은 빌딩들이야. 끝없이 더 더 높아지고 매번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기록이 경신되잖아. 그렇게 우리가 가진 자원을 다 쓰고 자연이 파괴되고 결국에는 인류도 이스터 섬사람들처럼 되어버릴까.
뜬금없이 이 이야기가 생각난 이유는, 요즘 내 하루를 보다 보면 내 인생이 걱정이 되기 시작해서야. 퇴근하고 운동도 하고 싶고 이직 준비도 하고 싶고 취미로 글도 써 보고 싶고 하다가도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 조금 쉬다가 이따 해 볼까' 하며 유튜브를 보다 보면 시간이 다 가버려. 그래도 '그래, 내일이 있으니까, '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또 비슷한 하루가 반복이 되고.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 시간을 물 쓰듯이 쓰다가 내 인생이 그냥 다 지나버리는 건 아닐지. 모아이 조각상 짓는데 모든 나무를 다 써버린 섬사람들처럼, 가벼운 유흥 거리를 쫓고 또 쫓다가 내 모든 시간을 다 써버리게 될지...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다면, 인프제의 세상에 온 걸 환영해ㅎㅎㅎ 그냥 매 순간 이런저런 생각이 매번 뒤죽박죽 섞여 있는 상태라 그래.
무튼 나는 요즘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고, 또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갔으면 좋을지 나도 잘 모르겠는 기분이야. 너는 확실한 인생 목표가 있어?
어쩌다 보니 미국에서 일하면서 살고는 있지만 때때로 이게 정말 내가 바라는 삶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어. 퇴근하고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다 보내버린 저녁에는 특히 그런 생각이 들고는 해. 하나뿐인 내 인생을 정말 이렇게 보내고 싶은지 말이야.
사실 퇴근 후에 하고 싶은 걸 말하라면 이것저것 있기는 해. 좀 너무 비싸서 못하고 있을 뿐이야. 예를 들면, 도자기 공예, 필라테스, 드럼, 패들보드, 승마.
전에 잠깐 알아봤을 때는 도자기 공예는 8주 수업에 500불, 필라테스는 1회 수업이 100불이었어. 진짜 비싸지..? 내 방콕은 게으름만이 이유는 아니야... 드럼은 1:1 수업이 대부분인 거 같았고 그래서 가격을 못 찾았어. 그리고 사실 안 봐도 비쌀게 비디오라 온라인으로 수업 들을 수 없나 찾아보다가 그러면 집에 드럼 세트가 있어야겠네, 싶어서 포기했고. 패들보드는 하려면 하나 사야 될 텐데 하나 사야 하나 고민하다가 여름이 다 가버렸고. 승마는 뭐, 원래부터 귀족들이 하는 스포츠니 엄두도 못 내겠더라.
그래도 꾸준한 운동은 살기 위해 꼭 필요하니까 요가 학원을 등록하려고. 여기는 요가랑 체력 단련을 둘 다 한다고 해서 한번 체험해 보려고. 원래는 사실... 오늘 프로그램 신청을 해 보려고 그랬는데, 내일 해 보도록 할게...!
오늘은 왠지 주저리가 엄청 길었네. 이런저런 사는 얘기 나누면서 친구랑 수다 떠는 시간이 그립다. 주변에 그런 친구가 한 명만 있어도 참 좋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 글을 통해서라도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아 참. 가기 전에 내가 만든 쿠키랑 마늘빵 사진 보여주고 갈게!ㅎㅎ
쿠키는 사실 실패했어. 어딘가 파는 쿠키처럼 포슬한 느낌이 전혀 없어. 맛은 있는데 모양이 이상해. 왜 그럴까. 다음엔 챗지피티한테 뭐가 문제일지 물어보고 해야겠어.
나는 내일이 금요일이라 일을 해야겠지만... 이번 한 주 정말 수고 많았고 좋은 주말 보내길~! 나도 이번 주말에는 밴쿠버로 여행 갈 예정이라 기대 중이야! 담에 또 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