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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명씨 Mar 15. 2024

여기서 죽고 싶었는데 민폐 같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나는 내 삶이 자살로 끝날 거라고 늘 생각한다. 그게 어떠한 형식이든 말이다. 오래전부터 그렸던 순간이 있는데 바로 광활한 자연에서 흔적 없이 스르륵 사라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히말라야산맥의 눈에 파묻히기, 사막 한가운데서 모래 폭풍을 만나기, 거대한 폭포에 빨려 들어가기 등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는 방식으로 끝맺는 결말이다. 무엇보다 마지막으로 보는 풍경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아르헨티나에 가고 싶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연히 사진첩에서 본 이과수는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라는 설명이 있었다. 그중 '악마의 목구멍'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경관이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이과수 폭포를 가겠노라 다짐했다. 그곳이라면 내 꿈이 이루어지기에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이상과 동경이 생겼다. '악마의 목구멍'이라니, 그 이름마저 얼마나 매혹적이던가!




실로 압도적이고 경이로웠다. '악마의 목구멍'을 마주한 순간, 그 어떤 수식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을 맞이했는데 거대한 자연 앞에서 오히려 머릿속은 텅 비어졌다. 나는 떨어지는 물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수없이 부딪히고 깨지는 물방울과 귓가를 파고드는 거센 낙수 소리를 온몸으로 담고 또 담았다.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하나,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 사람이 너무 많았다. 유명 관광지답게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였다. 이리저리 사람들 사이를 파고 들어가야 겨우 난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뛰어내리기란? 글쎄... 가능은 하겠지만 그전에 붙잡히지 않을까? 더불어 끔찍한 장면을 목격할 사람들게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둘째, 아름다운 여기에 비천한 내 육신을 남기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궁극적인 질문을 하게 됐다. 이토록 황홀한 곳에 내가 오점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신성하고 고귀한 기운을 뿜어내는 폭포에 압도되어 불손한 마음이 거센 물살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마치 그런 생각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내 마지막 선택이 아름다운 장소에서 일어난 민폐 사례로 기록되고 싶지 않았다.     



셋째, 살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맞이하고 싶던 장소에 방문하니 행복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나는 그저 한없이 작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니 네가 가진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금방 사라질 것들이니 그저 살아가라고 폭포는 나를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그날, 내가 지니고 있던 우울과 불안, 걱정들을 쏟아지는 물에 다 내 던졌다. 그리고 다짐했다. 꼭 다시 오겠다고. 그러면 계속 살아야 했다.  


   


물 안갯속에서 알록달록한 무지개가 피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인듯했다. 멈추고 싶은 때가 있다면, 계속 살고 싶어지는 때도 찾아온다. 이과수 폭포를 떠나기 전, 살짝 눈물이 나왔다. 꿈궈왔던 순간이 현실이 되었고 예기치 않게 위로를 받은 것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아쉬움 등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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