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상에쓰이는 독자 May 13. 2024

안경원에서 있었던 일(01)

내가 노안이라니.

띠로리로리     

 자동문이 열리며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 고객님이 들어오신다.     

 “어서 오세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제가 원래 눈이 좋았는데, 요즘 좀 시원찮게 보여서 시력검사해 보고 안경을 맞출까 해서 왔어요.”     

 “혹시 라식, 라섹 수술을 하셨을까요?”


 “아니요, 그냥 원래 눈이 엄청 좋았는데, 나이가 들어 그런가 좀 침침해졌어요.”     

 “그러면 먼저 기계로 체크해 보고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치잉 삐빅. 각막의 컨디션을 알려주는 기계로 2,30초면 이 사람의 대략적인 시력을 알 수 있는 기계이다.     

 지이잉.     

 결괏값을 종이에 프린트해주는데 마치 영수증 같은 느낌이다.     

 ”음, 고객님 혹시 본인이 원시이신 걸 알고 계셨나요? “     

 ”아니요, 원시가 뭔가요? “     

  ”원시란 멀리는 잘 보이는데 가까운 거리는 잘 보이지 않는 상태의 눈을 말합니다. “


 멀리 있는 간판, 칠판의 글씨 등등을 읽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었을 것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오래 할 때 두통이나 눈에 통증이 있거나 하진 않으셨나요?     

 고객님은 짚이는 것이 있다는 듯이 관자놀이 부근을 지그시 눌러주며 이야기했다.     

 “맞아요 요즘 책을 읽는데 1,20분만 읽어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이 빠질 듯이 아프더라고요.”     

 이후에도 나는 ‘이런 증상이 있으시죠?’라고 하면 고객님은 ‘맞아요!’라고 말하며 마치 점쟁이가 된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고객님의 상태는 초기노안의 상태이다.      

 “고객님 혹시 몇 년생 이실까요?”

 “저 80년생이요.”     

 30대 후반정도로 보이던 고객님이 40대가 넘었다고 하니까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몇 년생인지 만으로는 계산도 더뎌져서 말을 더듬게 되었다.     

 “아, 그럼 40...?”     

 “44살 이요.”     

 “엄청 동안이시네요.”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이다.     

 “에휴 그럼 뭐해요 벌써 돋보기나쓰고..”     

  “에이 고객님 정도면 또래분들에 비해서 눈도 좋으시고, 노안도 많이 진행되신 것도 아니에요.”     

 고객님을 칭찬하는 말에 쉽게 수긍하지 않으신다.     

 고객님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의사든 변호사든 안경사든 듣는 이의 기분을 고려하기보단 사실에 기반해서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자신의 실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동안인 사람에게 동안이라고 말을 하는 것도 내가 그만큼의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고.


 눈이 많이 나쁘지 않으니 비싼 제품으로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굳이 하는 이유는 나의 사명감과 정신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팩트로 폭행하듯이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옳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전문가라면 듣는 이로 하여금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학생 아이를 둔 젊은 엄마는 산책용 변색안경과 독서용 안경(돋보기)을 하나씩 맞추었고 며칠뒤 딸과 함께 콘택트렌즈를 구매하려 오셨다.

작가의 이전글 안경원에서 있었던 일(0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