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작은 방안에서 눈이 떠진다. 흰 배경의 먼지가 켜켜이 쌓여 떼묻은 창틀. 솜을 연상케하는 가벼운 무게, 그렇지만 내면의 득실한 어둠이 뭉쳐 아름다움이 아닌, 오염으로 흉측한 모습이 되었다. "너네들은 아무리 없애도, 왜 계속 나타나는 거니." 계속 나타나는 먼지들에 지친마음이 오갔다.
소용돌이가 들이닥칠 것 같은 한 숨을 크게 내쉬며, 그들을 무시한 채로 창문을 열었다. 광활한 창공을 보며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떼. 광활한 하늘을 보니, 내 마음은 한 없이 위축되었다. 드넓은 광경을 보니 인간은 한 없이 작은 존재라고 느껴졌다.
드넓은 하늘 아래, 인간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들과는 달리, 난 멍하니 서서 그들의 움직임을 지긋이 바라봤다. "나는 왜 의지대로 되지 않을까." 서글픈 마음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창 틀엔 먼지가 득실하며 총각 냄새가 가득하다.
먹을 것이라곤 어머니가 싸다준 일주일전 반찬. 어질러져 있는 이불과 함께 나는 오늘도 이들과 지내겠구나. 그러나 과거의 내 이름을 화려하게 만들어준 피아노. 피아노 역시, 덮개에 깔려 있어 흑과 백의 조화로 아름다운 선율을 내는 건반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때 피아노의 흑,백 건반과 내 길고 맑은 손의 조화는 표현을 넘어 세상을 울렸다. 그러나, 다른 자아가 형성되어 내면의 감성이 충만한 자아를 집어삼켰다.
나 자신을 혐오하며, 부정적인 믿음에 사로잡혔다. 나같은 작은 존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덮개에 깔려있는 피아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흰 건반, 흑 건반이 나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그러자 다른 자아가 나를 막기 시작한다. "과거의 영광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야. 명성을 되찾기엔 시간이 너무나도 흘러버렸어. 피아노를 연주하기엔 늦었어 친구." 그래.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불렸던 난 과거의 명성을 잃은지 오래다. 3년, 5년.. 10년. 지금은 잊혀진 퇴물이라 생각하겠지.
거장처럼 봉우리의 정상에 도착하지 못하고, 중간지점에서 낙오되었으니깐. 정복하려는 마음이 있었을까. 아니, 중간지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봉우리의 정상을 정복하지 못 했으니 나는 끝난 인생이지. 갑자기 피아노의 선율이 내면의 깊은 곳에서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과거의 아름다운 연주를 선사한 희미한 기억. 끊이질 않는 박수 갈채. 손과 손이 강하게 마주치는 손뼉소리. 그 순간 어둡고 케케묵은 물건들이 난리치는 작은 방이 고요하고 주홍빛을 띠는 조명 아래 대극장 연주홀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가로막는 악의 자아를 잠시 밀어내고 행동이 이끄는대로 덮개를 치워버렸다. 건반사이에 껴 있는 먼지들이 피아노를 잠식하고 있었다. 피아노는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지저분하고 더러워 손을 대기 싫었다. "그래, 피아노는 아름다워야해." 잃어버린 자아가 내게 말을 건넨다. 긴 시간을 들여 피아노를 아름답게 만드는 작업에 정성을 쏟았다.
긴 시간의 노력 끝에 먼지에 잠식당해 지저분한 피아노는 옛날의 모습을 되찾은 아름다운 피아노로 거듭났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은 기분이랄까. 10년만에 인사를 하려고 하자, 그 기간의 공백으로 두려움이 찾아왔다. 과거의 영광, 박수 갈채를 받던 나는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역들보다 훨씬 수준이 낮겠지.
그러자, 잃어버린 자아가 말을 건넨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를 찾아줘서 고마워." 아. 과거에 나를 거장이 되기 위해 도움을 주려 했던 친구가 내곁에 찾아왔다는 것을. 애틋한 마음으로 건반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오랜만이야. 그리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순 없지만, 부정의 고리에 묶여 있던 나를 풀어줘서 고마워."
그래, 10년 동안 나를 괴롭힌 문제의 근원을 찾았다. 내면의 먼지가 가득 쌓여 환기시키는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드넓은 세상에 한 없이 작은 존재인 인간은 하늘에겐 먼지와 같은 존재겠지. 선의를 지향하며 자연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면, 하늘은 인간을 용서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