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이와 뽑기
포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는 설렘과 걱정이 교차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다 되어 갔다. 포스코가 있는 꽤 큰 도시화된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터미널은 크지 않았고 건물은 오래전 분위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적당한 구름이 태양을 가려주어 라이딩 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다행이 비 예보도 없었다.
당분간 출근할 필요가 없어 급할 이유가 없었지만 예정보다 늦은 출발이라는 생각에 서둘러야 한다는 마음이 앞섯다. 배는 그다지 고프지 않았지만 점심을 먹고 출발하는게 시간적으로 유리했다. 아무거나 먹고자 했지만 여러 식당들이 눈에 보여 본능적으로 뭘 먹어야 후회가 되지 않을까 고민 되었다.
무엇보다 편하게 혼밥 할 수 있는 식당을 찾는게 먼저였다. 예전에 혼자 식당에 들어갔는데 4인 테이블 밖에 없어 음식을 시키고 앉아 있으니 곧이어 손님들이 줄줄이 들이닥쳤다. 혼자 식사하는 이상한 사람 그리고 4인 테이블을 차지해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입에 넣고 일어섰던 기억이 있다.
자전거를 끌고 터미널을 나서며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 입구 식당에서 아주머니가 한분이 문을 벌컥 열었다.
자전거 앞에 세워놓고 들어오라고 하신다. 노포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백반집이었다.
사실 여행이라는 들뜸에 별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그냥 들어가 정식을 시켰다.
나에게 있어 음식이란 활동하기 위한 에너지를 보충이 주 목적이지만 그럼에도 맛에 대한 요구가 전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 정식은 오롯이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함이었다.
-우경이와 뽑기-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랜 기억의 장면은 단칸방 그리고 혜림학교이다. 혜림학교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좀 더 완벽하지 못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이다. 담 하나를 두고 그 학교와 붙어있는 단칸방은 종일 볕이 들지않아 한낮에도 어두침침한 곳이었다. 원룸 만한 공간에서 부모님 형 그리고 나 이렇게 4식구가 생활했다.
천청을 뛰어 나니던 쥐들은 종종 부엌에도 출몰 했었는데 한번은 밥을 하고 있는 어머니 다리사이를 기어 올라가 혼비백산하여 어쩔 줄 몰라하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 장면을 목격한 나는 깔깔대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혜림학교 아이들의 걸음걸이,표정,말투는 우리와 달랐다. 우리들은 그들을 흉내내며 놀려대곤 했다. 왜 우리들은 그들을 놀리며 즐거워했을까? 아이들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아마도 우리는 약한 대상을 괴롭히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얼핏보면 아닌 듯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른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쨋든 당시 나 또한 우리들 중 한명이었다.
나보다 몇살 많은 그녀의 이름이 정말 '우경'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떤 계기 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녀와 종종 학교 운장장에서 소꼽놀이를 하곤했다. 놀이 안에서는 그녀는 나의 아내였고 나는 그녀의 남편이었다. 절뚝이는 걸음걸이, 웃을때 잇몸이 온전히 들어나며 언어가 비교적 어눌했지만 나는 우리들과 크게 다름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와의 놀이는 무척 즐거웠고 자주 그녀와 어울려 놀았다. 나는 그녀가 왜 혜림학교에 다니는지 의문이 들었다. 우경이는 왜 덜 완벽하게 태어 났을까?
즐거웠던 그녀와의 소꼽놀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순간부터 동네아이들이 나를 보며 그들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보이면 줄행랑을 치거나 몸을 숨겼다. 하루는 어떻게 알았는지 우경이가 단칸방으로 나를 찾아왔다. 나는 문을 꼭 닫고 숨소리까지 죽여 그녀가 돌아가기를 기다렸다.
학교 정문을 나서면 바로 우측에 '제일상회'가 있었다. 문구류와 과자등을 판매하는 잡화점이며 혜림학교의 유일한 문방구이기도 했다.
그 주인은 매우 인색했던 할아버지였는데 당시 지역 문방구에서 유행하던 뽑기를 들여왔다.
돈을 지불하고 판지에 붙어 있는 쪽지를 뜯어 거기에 적혀있는 물품을 경품의 형태로 받는 도박 같은 거였다.
하지만 우리들 중에 '제일상회'에서 뽑기를 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왜냐하면 판지 쪽지 절반 이상이 '꽝'이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어느 날 나는 제일상회에서 우연히 우경이와 마주쳤다.
그녀는 나를 보고 활짝 웃어 보였다.
그녀는 문구류를 사러 '제일상회'에 들렀고 거스름돈을 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을때 주인 할아버지는 뽑기를 권했다.
그녀는 망설였지만 잘 뽑으면 거스름돈 보다 큰 이익을 가져갈 수 있다고 설득했고 그녀는 결국 쪽지 한장을 뜯어 내었다. 결과는 당연히 '꽝'이었다. 당황한 그녀는 어쩔줄 몰라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주인 할아버지는 너가 '꽝'을 뽑아 다른 아이는 경품을 뽑을 수 있으니 좋은 일 아니냐며 우는 그녀를 달래듯이 나무랏다. 그야말로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 괘변이다.
하지만 어쩌면 주인 할아버지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이 장애를 안고 태어남으로서 나는 비장애로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