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 이방인의 기억 가판대
늦잠을 잤다. 뭐 서울에서는 흔한 일이고 그다지 죄책감도 없다. 먹여 살려야 할 처자도 없고. 헐레벌떡 어학원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세수도 하는 둥 마는 둥 급하게 전차에 올라탄다.
머리는 산발이고 피부는 엉망이다. 잘 닦이지 않은 안경 너머 세상이 흐릿하다. 사실 그다지 외모가 바람직한 적도 없다. 호기심 많은 독일인은 심심치 않게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이 급박한 상황에도 그런 독일인이 있다. 급하게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층계에서 되게 평범하게 생긴 독일인이 말을 건다. 독일인인지 그냥 서양사람일 뿐인지는 잘 모르겠다.
‘너 베트남사람?’ 기분이 영 안 좋다. 나는 베트남을 싫어하지 않는다. 관심 자체가 없다. 하지만 일본사람도 아니고 한국 사람도 아니고 심지어는 중국 사람도 아닌 베트남사람으로 나를 오해한다. 나는 도대체 왜 기분이 상한 걸까. 편견인가 정당한 반응인가. 왜 나는 베트남인이 동양 사람 중 가장 저급한 외모를 가진 민족이라고 생각할까. 일본은 정말 싫은데 왜 일본인으로 오해받는 건 기분이 나아지는 걸까. 중국인으로 오해받는 건 정말 싫다. 게다가 베트남이라니. 인종차별. 나치의 유대인 혐오는 절대자의 계획일까. 인간의 일상이 쌓아주는 광기인가. 나에게 침을 뱉고 싶다. 내가 잘 모르는 나의 악의 일상성은 어디가 그 끝일까. 성당의 고백 성사에는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해서도 통회하오니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구절이 있다. 이 기도를 드려야 하는 걸까? 떨어지는 낙엽 한 장에 죄책감을 느끼는 감수성 따위는 애초에 나에게는 사치인가. 지금 나의 관심사 속에 타인이 있을까. 나는 필사적으로 계단을 올라가면서 부디 어학원은 늦지 않게 학수고대한다. 인간은 그런가. 오만은 나를 보지만 허영은 남을 본다. 세상은 소설인지 실제인지 모르겠다. 구분은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