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행운은 오래가지 않는다 (위험한 아르바이트)

벼룩시장: 이방인의 기억 가판대

by 목림


성악을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은 피아노가 있는 방음 연습실이 필요하다. 일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독서실이나 조용한 공부방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친구가 묵고 있는 기숙사의 입숙은 이미 허락절차를 끝냈지만 순번 상 3개월의 대기 후 실제 입숙이 정해졌다. 이런 이유로 실제 입소를 하기 전 난 임시 숙소가 필요했고 당연하게 연습도 필요했다.

임시기숙사(위헌한 아르바이트).jpg

친구 소개를 거쳐 난 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형이 머물던 뮌헨 대학 산하 기숙형 빌라에 머물렀다. 이곳은 이미 대학에 입학한 정식 학생 신분만이 입주가 가능한 곳이었지만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예민한 성격의 공학도 형이 3개월의 기간을 남기고 이사를 하게 되어 남은 3개월의 계약기간 동안 내가 임시로 머물 수 있었다. 게다가 이 빌라형 기숙사에는 공동 지하공간이 있었는데 피아노가 있는 일종의 지하 휴게실이었고 사람들의 왕래는 거의 없었다. 숙소와 연습실을 함께 얻은 행운이었다. 소속감 없이 지내던 어느 날 내 숙소의 벨이 울린다. 다른 동에 사는 한국인 여자분인데 전에 살던 형과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남편도 있는데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묻지도 않았고 그 여자분이 이야기해 주지도 않았다. 사실 그분이 어떤 전공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꽤 공격적이고 거침없이 용건을 이야기한다. 서양식이다. 나는 다른 동에 사는 한국인 부부이고 당신은 성악을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라 들었다. 한인 성당을 다니는 것을 안다. 내가 아는 본토 성당을 다니는 독일인의 딸이 성악을 배우고 싶어 한다. 당신이 아르바이트로 성악 개인 수업을 해 주면 좋겠다. 어안이 벙벙하다. 너무 갑자기 학비에 보탬이 되고 전공을 발전시키는 행운이 온다. 하지만 난 독일에 온 지 2달도 채 되지 않았고 성악 실력은 검증되지 않았고 독일어 실력은 무섭게 부족했다. 그런데 수락한다. 천벌을 받으면 어쩌지. 신분을 속이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경험은 하고 싶다. 결국은 위대한 성악가가 되어서 내 죄가 모두 가려지는 그 순간, 안심하는 그 순간, 죽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리고 그때는 미처 몰랐다. 늘 그렇지만 행운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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