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 이방인의 기억 가판대
다시 만난 한국인 여자분은 첫인상과 다름없다. 불문곡직 나를 이끌고 어디론가 간다.
근처 독일 성당의 여신도 모임인데 영 불편하다. 그녀가 그곳의 일원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독일 아주머니들. 독일 어학원 선생님이 20명쯤 앉아 있다. 머리 스타일과 입은 옷만 다르다. 향긋한 커피 냄새와 뭔가 우아한 듯한 말투. 18세기 유럽의 한가한 자들을 상대하는 클래식 음악가들의 공연은 이런 자리였을까. 유한계급의 광대. 귀족의 여흥과 그들만의 교양. 그리고 난 누나가 3명인데 주위에는 또 여자들이다. 좀 피곤하다. 게다가 누군가의 딸을 가르쳐야 한다. 기습적인 노래 신청이 들어오고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여성들 앞에서 울고 싶은 심정으로 노래를 한다. 수줍은 청년을 이리 모질게 다루는 건 세상 어딜 가도 비슷하다. 뭐가 이렇게 비슷한 것들이 많은지. 학부모가 흡족하신 모양이다. 나를 소개해 준 한국인 여자분과 독일인 아주머니가 뭔가를 속닥거리다가 나에게 쪽지를 준다. 얼마나 다니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방문해야 할 주소다. 무척 휘갈겨 쓴 독일어가 심란하다. 서로의 입장에서 선을 행하는 이유는 거창하지만 크든 작든 거기에는 각자의 이득이 도사린다. 모든 이는 그들만의 보람과 가치를 믿지만 순수한 도움은 애초에 없다. 그런데다 이분들은 일관된 지침이 없고 채널이 너무 많다. 그녀들은 리모컨은 주지만 나에게는 건전지가 없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쪽의 문제이다. 철저히 나의 여성관이다. 그런데 나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