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아버지의 밥과 타인의 계산

벼룩시장: 이방인의 기억 가판대

by 목림


잔뜩 취한 일요일 밤에 문득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국제전화는 비싸고 나의 고민은 값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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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전화비는 아버지의 몫이고 싸구려 고민은 나의 몫이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부모와 자식은 공평치 못함으로 치자면 모든 관계 중 으뜸이다. 아버지는 다 쓰고 나는 다 받는다. 오늘도 아버지는 밥은 거르지 말라고 말한다. 그 말, 밥은 거르지 말라는 그 한 문장이 어쩌면 내가 유일하게 공평하게 나눠 받는 사랑인지도 모른다. 어제 저녁에는 기숙사의 친분 있는 한국 학생들이 공동식당에서 밥을 같이 먹었다. 나는 엄청난 밑반찬을 가지고 왔고 즐겁게 풀어낸다. 몇몇이 요리한 음식들도 풍요롭다. 어려운 친구들이 있다기에 한국 상회에서 한국 쌀 20kg을 사면서 이것을 내가 모두를 위해 매달 사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말을 해 볼까 고민한다. 그때 누군가 이야기한다. 쌀 따위는 터키 상회에 가면 얼마든지 저렴하게 살 수 있고 한국 쌀이니 일본 쌀이니 무슨 의미가 있나. 게다가 여기는 우유 쌀이라는 이름으로 우유에 삶아 먹는 쌀도 있다. ‘밀키 라이스’라고 했던가. 가격은 무척 싸다. 이렇게 값싼 쌀이 많은데 우리에게 쌀이 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고 한다. 더군다나 이곳은 빵의 천국 유럽이다. 놀랐다. 그전에 이런 자리에서 누군가 요리를 얻어먹는 면죄부용으로 쌀 이야기를 했었나? 저 사람은 쌀에 대한 트라우마라도 있는 걸까. 신선하다. 갈등의 색이 정말 사악하게 다가온다. 누구에게 내가 무언가를 베풀어 줌에 대한 나의 만족에 약간의 오차가 생기고, 선함은 계산되고 배려는 그의 서사가 참견한다. ‘선’ 한 것을 찾는답시고 더 선한 꼴은 못 보겠다는 심보는 너무 곤란하다. 물론 그 반대는 더 곤란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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