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영어가 되었다

아이처럼 몰입하며 삶의 긍정을 쌓다

by 리인

엄마가 된 후 나에게 가장 재미있는 취미 생활을 하나만 꼽으라면 '영어'라고 말할 것이다. 중학교 진학 후 영어시간에 배운 필기체의 매력에 빠져 학교에서 돌아오면 영어 필기체를 쓰며 놀곤 했다. 미닫이 문이 있던 작은 방 안 책상에 앉아 정성을 다해 필기체를 쓰던 내 모습은 아직도 사진 속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남아있다. 고등학교 야자시간에는 성문 종합 책을 보며 영작하는 게 가장 뿌듯했지만 영어영문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한 걸로 봐서 영어를 학문으로 공부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후 영어 공부를 놓고 살다가 30대 중반이 되었을 무렵 좋은 기회가 되어 미군 부인에게 영어 회화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남편이 공군 장교로 복무했는데 제가 살던 부대 옆에 미 공군 부대가 있어 근처에 미군이 많이 살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따로 자세히 쓰려고 합니다.^^)


올해 휴직을 하고 제일 먼저 한 일도 영어 학원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인천에 살 때는 인천서구 영어마을에 있는 성인영어회화반에 다녔는데 수업료가 저렴하면서도 원어민과 소규모 수업이 가능해 만족도가 아주 높았다. 지금 사는 곳인 일산에서 인천영어마을까지 다니는 건 무리라는 생각에 마땅한 영어 학원을 찾던 중 '컬컴'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컬컴 운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일단 전화로 상담 예약을 하고 찾아간 곳은 학원이 아니라 카페 같은 느낌이었다. 붉은 색감의 벽이 둘러싼 공간에 긴 원목 테이블이 7-8개 정도 놓여 있고 미니 당구대와 스크린도 설치되어 있었다. 분위기 자체에서 젊음과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이곳은 기존 학원과는 사뭇 다른 곳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이곳은 강사 혼자 수업을 하고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리더가 수업을 이끌어가면서 워크쉬트에 나온 질문과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는 곳이었다.( 리더도 돈을 거의 받지 않고 그간 공부한 영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참여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영어로 수다를 떠는 곳이었다. 단어나 문법, 구문을 알려주는 선생님은 없고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는 그야말로 성인식 영어 수다를 위한 공간이었다.(레벨마다 수업 방식이 다르지만 제가 속한 레벨은 그랬습니다.)


영어를 놀이로 생각하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일주일에 2번 2시간씩 총 4시간의 수업을 하는데 처음에 1년 과정을 등록했다가 40만 원만 더 내면 10년 회원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 일단 영어를 다시 시작했으니 적어도 10년은 해야지하는 생각에 10년으로 추가 등록해 버렸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60대 회원분들(회사 대표님들)은 평생회원으로 등록하셨더랬다.


요일마다 멤버도 다르고 리더도 달라 분위기가 사뭇 다채로웠다. 오전 반과 오후 반 수업을 모두 다 들어 보았는데 반마다 특색과 개성이 있었다. 우선 오전 반은 사업체를 경영하시는 대표분들과 유학을 준비하는 유학생들이 많았다. 일명 대표님들은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많은 경험과 고급진 어휘로 무장한 심도 있는 이야기로 세상 공부를 하게 해 주셨다. 박사를 준비하는 유학생들은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니 호기심 많은 나의 자아가 물 만난 고기처럼 유영했다.


나의 학창 시절 꿈은 교환학생으로 외국 대학을 가거나 유학을 가는 것이었다. 대학 시절 가정 형편상 교환학생이 되는 건 포기했고 교대 진학 후 유학의 꿈은 고이 접고 살았는데 나의 꿈을 현실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니 신기하기도 부럽기도 했다. (브런치에 와서 '연대 나와서 필라테스하시는 작가님'이 교환 학생으로 가기 위해 학교를 휴학하고 알바로 돈을 모았다는 글을 읽으며 저런 방법도 있었는데 내가 너무 쉽게 포기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역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어느새 그들의 유학 준비 과정이 내 일인 양 공감하고 걱정도 나누었다.


저녁반은 주로 직장인들이 많고 연령대가 낮았다. 내가 나이순으로 서열 두 번째 정도 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도 나이 서열이 자꾸 높아져서 부담스러운데 여기서마저 높네요.) 젊은 친구들이라 역시 체력도 열정도 강하다. 서울까지 출퇴근을 하면서 밤 8시에 영어를 배우러 오다니. 아마 내가 복직을 하면 퇴근 후 저녁을 먹고 공원을 좀 걸은 후 수업 준비를 하다가 쓰러져 잘 게 분명하다.


30대 회원들은 체력과 열정은 강하지만 삶의 고민은 많아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해 고민이고, 일이 너무 힘들어서 이직여부도 고민이라고 했다. 이직이 좀처럼 드문 교직에서 그저 교직이 천직이려니 하고 살아온 내게 이직을 3-4번 했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신선했다. 곧 우리 아들도 사회라는 정글에 뛰어들어 취직과 이직을 하면서 고군분투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내 자식 얘기처럼 짠하고 공감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k 엄마인가 보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아서 영어수업은 나의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어버렸다.


수업 중 사적인 이야기를 떠들어도 그게 영어라면 수업의 일부이니 주제의 제한 없이 부담 없이 수다를 떨 수 있어 좋았다.

영어로 말하면 나도 모르게 솔직해졌다. 머릿속으로 영어 문장을 만들며 머리를 굴려 나를 감추고 포장하는 일까지 동시에 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의 부족한 실력으로는 요.) 그래서 한국어로는 잘하지 않는 마음속 심연의 솔직한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하게 되었다.

영어를 공부하고자 시간과 돈을 들여 모인 사람들은 대체로 학구적이고 순수하다. (만고 제 생각입니다 만) 그런 좋은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다 보니 배우는 시간이 더 즐거워졌다.

그렇게 영어에 다시 빠져들었고 나에게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되었다.


어린아이가 놀이에 흠뻑 빠져 몰두하듯 어른도 무언가에 재미를 느끼며 그것이 순수한 놀이가 되었을 때 삶의 긍정은 쌓여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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