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를 외치며 76세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M 할머니가 있습니다. M할머니는 평생을 평범한 시골 주부로 살면서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자식 다섯을 먼저 보냈습니다. M할머니는 수를 놓으며 외로움을 달래다 72세 때 관절염이 심해져 그 마저도 못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 대신 손에 든 것이 붓이었습니다. 한 번도 그림을 배운 적 없이 늦게 시작한 그림이었지만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며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녀는 '모지스 할머니'로 불리며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 중 하나로 꼽히는 화가 애나 메리 로보트슨 모지스입니다. 그녀의 따뜻한 그림들은 어느 수집가에 눈에 띄어 공개되었고 88세에 '올해의 젊은 여성'으로 선정되었습니다. 93세에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했으며, 100번째 생일은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녀의 그림은 백악관에도 걸려 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열정은 나이를 초월해 버리네요. '올해의 젊은 여성상'도 당당히 받았으니 말이죠.
만약 지금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는데 나이 때문에 망설인다면 주저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76세보다 젊다면 말이죠.
시간이 없어서, 상황이 안 돼서, 너무 피곤해서 못 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시간을 내고 상황을 정리하고 체력을 키워서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실행해 보세요. 시작할 용기만 있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올해 48세가 되어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교대 시절 부전공으로 미술교육을 배우며 잠깐 유화를 만났다가 붓을 놓은 지 20여 년이 넘었으니 거의 처음 배운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일주일에 한 번은 레슨을 받고 한 번은 혼자 나가서 그림을 그립니다. 주로 혼자 있을 때 제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골라서 스케치하듯 쓱쓱 그려봅니다.
첫 그림은 제가 좋아하는 인상주의 화가 르느와르의 화병 작품을 따라 그렸습니다. 처음에는 꽃잎이 큰 그림을 그리는 게 쉽다는데 멋모르고 덤볐다가 후회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집 주방 벽 인테리어 용으로 걸어 놓을 정도는 된다고 위안 삼았습니다.
두 번째 그림은 자작나무 숲이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힐링되는 순간을 꼽으라면 오전 10시쯤 새소리를 들으며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나뭇잎을 흔드는 숲길을 걸을 때라고 단숨에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작나무 숲길을 그릴 때 정말 행복했습니다. 20대에 그린 계곡 그림이 있던 캔버스 위에 40대 후반이 되어 자작나무 기둥을 그리고 햇빛에 반짝이는 잎사귀를 그릴 때 내 마음도 다시 초록빛으로 반짝였습니다. 나는 그 숲 속에 들어와 이미 걷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그림은 저의 자화상이었어요. 소마미술관에서 목도한 변월룡, 이쾌대, 배운성 작가(다시 보다, 한국 근현대미술전)의 자화상을 보고 마음속에 나비가 펄럭거리며 날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다음 날 아무도 없는 화실로 달려가 연필 스케치도 않고 무모하게 캔버스에 얼굴 윤곽을 터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작나무 숲 그림이 얼마나 가성비 좋은 그림인지 인물화를 그리며 처참하게 깨달았습니다. 이목구비의 위치가 조금만 달라져도 터치가 조금만 강해져도 때론 나 아닌 다른 남자가 되기도 하고, 때론 유튜버 서준맘(딸의 표현에 따르면)이 되기도 했으니까요. 고난도의 인물화를 단순히 마음속 나비 한 마리만 믿고 시작하다니 역시 무식하면 용감하고 용기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거였습니다.
선생님의 도움과 다른 작가의 인물화를 참고하며 우여곡절 끝에 자화상을 완성했습니다. 자화상을 본 가족과 지인의 반응은 "왜 실물보다 못하게 그렸어?"였습니다.
나에 대한 조금은 소심하고 위축된 자아상을 자화상을 통해 알게 된 계기였습니다. 일부러 좀 더 못 생기게 그리고 싶었거든요. 너무 미화해서 그리는 게 싫었어요. 그건 남을 속이는 일이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다음에는 최대한 예쁘게 그려보렵니다. 몇 년 뒤가 될지 모르지만요.
SERENDIPTY: 뜻밖의 기쁨, 재미, 발견이라는 단어입이다. BTS 지민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이 단어는(소심한 아미입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해서 조금씩 성취할 때마다 떠올려 보는 보약 같은 단어입니다.
저에게는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대단히 두렵고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작가로 등록되고 몇 년이 지나도 온갖 핑계를 대며 미루고 미루다 모지스 할머니를 보며 결심했습니다. 이틀에 한 번은 무조건 글을 올려보자. 브런치 글을 많이 읽어보자. 브런치에서 글을 통해 작가님들을 만나면서 책과는 다른 생경하지만 생생한 간접 경험을 하면서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지금이야말로 시작하기에 가장 빠른 시간이라는 깨달음을 다시 한번 얻었습니다.
괴테는
"당신이 할 수 있거나 할 수 있다고 꿈꾸는 그 모든 일을 시작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 기적이 모두 숨어 있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꿈꾸는 바로 그 일을 시작하셔서 SERENDIFITY(뜻밖의 기쁨)와 천재성, 능력, 기적 모두를, 아니 하나라도 발견해 보시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