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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Nov 04. 2023

나는 소심한 사람이 좋다.

오늘의 문장


나는 소심한 사람이 좋다.

소심한 사람이 편하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경상도 특유의 투박하고 날것인 대화에 익숙해져 살아왔다.

"문디 가시나. 지랄하고 자빠졌네."

경상도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법한 이 문장은 욕이 아니라 애정과 친근감의 표시라고 암묵적인 합의를 세뇌당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목소리가 담을 넘듯 크고, 농담인 듯 아닌 듯 날 선 말을 하는 경상도 아저씨를 만날 때면 너무 부담스러워 도망가고 싶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라는 영화에서 황정민 배우가 분한 나두철 형사는 설탕물에 빠진 과일처럼 마초를 온몸에 코팅한 데다가 앞에서 말한 부담스러운 조건을 모두 갖춘 캐릭터였다. 황정민 배우가 구사하는 투박한 사투리와 거친 말본새가 '목소리 큰 경상도 아저씨'를 너무나 리얼하게 재현해 놓아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또 도망가고 싶었다.


소심한 사람은 말로 내뱉기 전에 자기 검열을 한다. '생각 좀 하고 말해라.'라는 말은 소심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내 말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너의 마음을 베지는 않을까, 네게서 돌아오는 말이 다시 나를 베지는 않을까.

짧지만 긴 검열을 거친다.


그 검열의 시간이 나에게는 배려로 느껴진다.

그들의 말은 날도 서있지 않고 아프지도 않다.

그들이 조심스레 하는 한 마디는 그래서 더 귀하고 소중하다.

그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온전히 나를 집중하게 된다.

그들이 읽고 있는 책, 그들이 마음속에 그리는 그림이 궁금하다.

소심한 사람들은 마음에 좋아하는 철학자 한 명, 화가 한 명은 품고 살 것만 같은 예술적 우월함마저 든다.

그래서 더 친하고 싶어 진다.

나는 소심한 사람과 오래오래 친하고 싶다.

나도 쭉 소심하고 싶다.



라라 크루 (오늘의 문장)

소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집어삼키지 않는다. 소심인의 마음은 강풍 없는 선풍기와 같다. 미풍만 내보낸다. 자기 마음이 멍들지언정 절대 남에게 상처 주지 않는다.

소심하면 뭐 어떤가. 소심인은 남을 물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아플까 봐 머뭇거린다. 이건 몹시 아름다운 장점이고 인간적으로 대단히 멋진 특징이다. 나는 오늘 하루도 양처럼 책을 오물거렸을 뿐 아무도 할퀴지 않았다. 이 사실에 충분히 감사하다.


나민애, <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 된다>




#라이트라이팅 #라라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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