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나들이 Jul 20. 2023

혼자여서 좋은 여행 (feat. 석모도)

'혼자여서 좋은 직업'을 읽고



지난 주말에 처음으로 '혼자'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들 챙기느라 훌쩍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던 차에 딸아이 기말고사도 끝났고 속으로 '엄마도 쉬고 싶어'를 외치며  칫솔과 여벌옷 하나만 챙겨서 집을 나왔다.(어째 어감이 좀 그렇습니다)


아침에 학원 가는 딸과 같이 나오며 "엄마 오늘 여행가~ 내일 올 거야."하니 딸의 반응은 "아~'"한 마디뿐이다. 쿨한 건지 무심한 건지 한편으로는 누구랑 가는거냐 왜 갑자기 여행을 가는거냐 등등 묻지 않는 딸에게 서운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것저것 묻지 않아 줘서 고맙기도 했다. 오늘은 혼자하는 여행이니 후자로 하자.


원래 만성적인 허리 통증이 있었다. 리가 아프니 운전을 하고 나면 배터리 방전 직전처럼 몸이 피곤하고 통증이 지릿지릿 온몸에 저며왔다. 혼자 운전하며 가는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운동을 한 후로 장시간 운전을 해도 거뜬했다. 이러면 말이 달라지지. 혼자 떠나는데 가장 큰 용기가 되었다. 게다가 나는 운전 좀 하는 여자였다.(과속 딱지와 차 흠집은 달고 살지만요ㅜ)


목적지는?

동쪽 강릉? 헉 3시간 30분 너무 멀다. 아팠던 내 허리가 짱짱해졌다 해도 그건 너무 나갔다.

전주? 아냐 괜히 남쪽으로 갔다가 차 막히면 감당 못해.

그럼 서쪽? 강화? 내친김에 석모도? 석모도는 딸이 유치원 때 그러니까 무려 10년 전에 가족끼리 다녀왔는데 한번 더 가도 괜찮다 싶었다. 1시간 30분 정도면 멀지 않고 석모대교도 생겼다고 하니 네비에 석모도 수목원을 찍고 달렸다.


그렇게 선전포고 하듯 1박 2일의 석모도 여행을 혼자 하고 온 나는 '혼자'라는 단어와 각별해졌다. 그러다 늘 다니는 도서관 북카페에서 '혼자여서 좋은 직업'이라는 제목을 발견했다. 뉴턴의 사과보다  100배는 더 센 만유인력으로 이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이 책의 작가는 하루키와 오가타 이토 등 유수한 일본작가의 작품을 번역한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이다.

에세이를 읽으며 5번 이상 크게 웃은 건 처음이다. 우선 작가와 친밀함이 느껴져 좋았는데  작가와 나의 공통점을 굳이 꼽자면 경상도 출신에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시는 엄마가 있고 사랑스러운 딸이 있다는 거다.


아침에 딸아이 등교시키고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다 보면 그녀의 말처럼 아침 시간은 주먹 속의 모래처럼 술술 샌다. 그녀는 집에서 번역도 하고 책도 쓰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난 집에 있으면 결국에는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죽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매일 어디로든 나간다. 그게 오늘은 조금 멀리 떠나게 되었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보여주는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 자꾸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를 어느 정도까지 오픈해야 하는 것인가? 나를 다 오픈하고 나면 부끄러워서 이 글을 읽는 지인들의 얼굴을 못 볼 것 같아 자꾸 망설여졌다.


이 책에선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남편과 관계가 힘들어서 간 점집에서 날짜까지 알려주며 남편과 사이가 괜찮아질 거라고 했지만 1년 뒤 이혼했음을 담담히 써놓았다. 혼자 여행온 나에게도 나를 보여주는 글을 쓰는 것에도 조금의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었다.


혼자 여행을 하고 돌아오니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늘 오늘 저녁은 뭐 먹지? 딸아이 영양제는 뭘 먹이지? 하며 가족의 생존과 웰빙에 대한 고민만 하다 처음으로 나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는 건 일종의 도락이었다.


니체는 아모르파티와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강조했다. 아모르파티는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으로 자칫 자신이 가진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소극적인 태도 같지만 고난과 어려움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여기에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에 긍정까지 붙인 디오니소스 긍정은 우리 삶에서 오는 고통도 가치가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이 우리를 고귀한 인간으로 만든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나의 감정에 대해 느끼고 반응해 줄 여유 없이 살아가다 혼자 떠난 여행은 '사회적 나'가 아닌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터가 되어 주었다.


함께 떠나면 즐겁지만 혼자 있으면 깊어지는 나 홀로 여행으로 이제 '난 나에 대해 좀 잘아'하고 말할 수 있겠다.


권남희 작가와 만난 적은 없지만 그녀의 글이 너무 좋아 '귀찮지만 행복해볼까'까지 연거푸 읽고 나니 만난 적도 없는 랜선 언니를 얻은 기분이다. 에세이가 주는 매력은 또 이런 것이구나. 나를 한 꺼풀 벗기고 내 마음을 보들보들하게 만들어준 나 홀로 여행과 그녀의 에세이는 모두 고귀한 나를 만들어 주는 경험이 되어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려움이란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