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나들이 Jun 18. 2023

두려움이란 세계

나에게 주고 싶은 용기

 학교를 휴직하고 동료로부터 건네 듣는 소위 도움이 많이 필요한 어린이들 스토리에 막연한 두려움이 생겨 학교 복귀에 심리적 거리감을 두고 있던 참이었다. 주말 오전 늘 가던 도서관 북카페 서가에서 심리적 거리감이 무색하게 눈에 꽂히는 단어가 있었다. '어린이'

실은 몇 해전에 베스트셀러라는 말을 듣고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바쁜 학기말 업무를 핑계로 몇 장 읽다 그대로 반납한 책이었다.


 브런치북 대상으로 선정되어 '어린이의 문장'을 출간한 정혜영 작가님과 매월 북한산을 같이 오르는 사이라 어제 등산을 마치고 북한산을 품은 뷰맛집 카페에서 우리만의 조촐한 출간파티를 열었다. 흡사 작가와의 대화처럼 혜영작가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던 차에 갑자기 '어린이의 문장'과 제목이 비슷한 '어린이의 세계' 이야기를 꺼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책사랑이 유별난 언니도  '어린이의 문장'을 읽으며 '어린이의 세계'를 같이 읽고 있다고 했다. 혜영작가님은 몇 년 전 이 책과 비슷한 책인 '부지런한 사랑'  책을 보며 나도 언젠가 어린이의 문장을 담은 글을 쓰리라 다짐했고 그 꿈이 이루어져 너무 행운이라고 하셨다. '부지런한 사랑'은 이미 읽었고 '어린이의 세계'를 읽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렇듯 목차를 살피던 중 '마음속의 선생님'을 먼저 펼쳤다.  작가가 청중으로 만난 교사는 작은 이야기에도 크게 반응해 주고 어린이들처럼 귀여운 면이 있으며 끊임없이 공부를 계속한다고 했다. 계속 읽어 내려가다 '한 명의 노동자이기도 한 교사에게 스승의 모습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구절에서 코끝이 시큰시큰해 왔다. 나는 노동자와 스승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다 휴직을 하면서 그 균형이 깨진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도움이 많이 필요한 어린이의 이야기를 듣고 노동자로서 힘들게 일할 내 모습을 떠올리며 시작도 전에 두려워한 건 아닐까? 교실 안에서 나는 스승의 한 면모를 갖추려고 노력하며 어린이에게 도움이 되고자 고민했었는데 그 공간에서 벗어나니 나의 본성에 균열이 갔던 것은 아닐까?

 현직 교사가 아닌 작가가 남긴 그 문장이 위로가 되었다. 장난처럼 친구들에게 학교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농을 치곤 했지만 그 문장은 나의 마음속 불균형과 균열을 어루만져주는 몽글몽글한 위로였다. 엄마 간병으로 휴직한 지 근 4개월이 다 되어가는 요즘은 가끔 내가 교사였다는 사실도 까마득하게 잊곤 한다. 며칠 전 우리 딸도  "맞다! 엄마 초등학교 교사였지?" 하는 것으로 보아 비단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닌가 보다. 어린이의 세계에서 어린이의 마음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잊고 있었던 그들의 사랑스러움과 엉뚱함, 기발함이 떠올라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도 띵하고 피곤해 다시 침대로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럴 때 학교에 가면 어린이들에게 에너지를 얻고 생기발랄해지곤 했다. 이제 보니 매일 아침 다시 눕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나에게 에너지가 되어주었던 아이들 생각을 하곤 했었다. 몇 개월 뒤면 곧 만나게 될 나의 어린이들은 두려움이 아닌 에너지원이었던 것을 새삼 자각하게 되었다.

 누구나 어떤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고, 동물일 수도 있으며 감정일 수도 있다.


 그 두려움의 실체가 한때 행복과 에너지원이었다는 사실은 잊고 두려움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시소의 받침대처럼 두려움은 행복과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정중앙에 필요한 지지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아들러가 미움받을 용기에서 전한 여러 문장 중 내 마음을 울린 한 문장을 전하고 싶다.

'세계란 다른 누군가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바뀔 수 있다.'


<항상 너른 품으로 우리를 받아주는 북한산이라는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