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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업 Sep 05. 2023

오만함을 버리다

"열심히 써주셨는데 같이 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아요"


장문의 답장이 왔지만 핵심은 그랬다.

예상했다.

그런데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3곳 중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곳이어서 가장 들어가고 싶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한 곳에서도 장문의 거절 통보를 받았다.

거절의 멘트는 비슷했다.

열정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함께하기에는 어렵겠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자의 자신감을 믿었건만

2곳에서 거절 통보를 받으니 자존감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스터디에 들어가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 다시 공부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머지 한 곳에서는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히 떨어진 것으로 생각했다.

카페에서 본 정보로는 당장 모레부터 스터디를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는 건 이미 다른 사람을 구한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나머지 한 곳에서 같이 해보자고 연락이 왔다.

열정이 마음에 들었단다.

스터디 시작 직전까지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했다가 아무도 없어서 인원수라도 맞추자는 생각으로 나에게 연락한 것 같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단 스터디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두 곳에서 떨어지고 어느 정도 마음을 정리하고 공부에 집중하려고 할 때 스터디를 하게 되어서, 그리고 당장 스터디에 대한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려니 걱정이 되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사람을 받아준 곳이다.

실력이 고만고만해 보이는 사람들 중에서는 제일 열심히 할 것 같은 느낌을 풍겼으리라 생각한다.


어찌 됐건 좋은 스터디도 중요하지만 내가 열심히 하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최대한 그들이 가진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들고, 나 또한 준비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을 그들에게 공유하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려고 마음먹었다.



처음 스터디에 참여해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당연히 나는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퇴사하고 준비하는 것도,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것도, 그리고 그런 사람이 3개월 기초 이론 강의만 듣고 한국은행 스터디에 들어오겠다고 한 것도


약간 무시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았다.

시간만 낭비하다가 가겠네 뭐 이런 시선이었다.

중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첫 스터디에서 모의고사 문제를 보자마자 그들이 왜 나를 그런 시선으로 봤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3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하면서 기초 체력을 쌓았고, 나름 응용문제들도 접했었다.

2013년까지의 기출문제를 보면서 내 나름대로 답안을 작성해 보는 연습도 했다.

문제를 건드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생각했다.


하지만 모의고사 시간 내내 “어떻게 풀어야 하지?”라는 생각만 하고 끝났다.

어떤 챕터에서 문제를 낸 것인지는 알겠는데, 내가 가진 지식을 총동원해도 뭐부터 써 내려가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래서 나를 그런 시선으로 봤구나’


3개월 동안 경제학에 미쳐 살면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자신감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발제자는 아직은 초반이라 쉬운 문제를 위주로 가져왔다고 얘기했다.

그럼 실전 문제는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울 텐데...

왜 사람들이 포기하고 나가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스터디가 끝나고 나는 스터디 장에게 결원이 발생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다른 금융공기업으로 돌리거나 합격해서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을 활용하면 다른 회사에 지원할 때 좀 더 수월하게 가는 편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먹고살자고 하는 공부이고, 어느 회사를 들어가든 결국 스트레스는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2년 안에 합격하지 못하면 결국 포기를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 가서는 결국 스터디를 나가는 사람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깔끔하게 포기하고 수월한 길을 택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려고 과감하게 퇴사까지 했는데, 나는 또다시 현실의 문제에 부딪혔다.



스터디가 끝나고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와 잠시 생각했다.

나는 퇴사를 결심했을 때에는 한국은행이 아니라 다른 금융공기업에만 합격해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는데, 한동안 한국은행만 생각하고 있다 보니 다른 금융공기업은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현재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는 오만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오만해지고 있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인지하게 된 것이다.

현실 속에는 또 다른 현실이 도사리고 있고, 그때마다 이 전의 현실들은 극복하기 쉬운 일처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퇴사를 앞두고 있을 때에도 나는 오만해져가고 있었는데,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경험들이 하나씩 쌓여 지금은 인지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좋게 생각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목표에 관한 생각은 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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