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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업 Mar 17. 2024

3년의 끝자락

예상보다 조금 더 길어졌던 3년 간의 수험생활이 끝났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목표를 달성했다는 행복함

더 이상 지긋지긋한 공부와 면접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함

그리고 앞으로 굶어 죽을 일은 없겠다는 안도감까지

여러 가지 감정들이 오고 갔다.


물론 걱정이 없어진 건 아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을 생각하면 이 3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도 안다.

본격적인 인생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걱정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지금보다 더 잘 먹고 잘살기 위한 걱정만 하면 된다니

이런 발전적인 걱정만 하면서 살 수 있는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꽃길만 걸을 수 있을까?




나는 경험적으로 안다.

내 인생은 꽃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보다는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진흙탕에서 뒹굴다가 겨우 빠져나오는 모습이 나와 훨씬 어울린다.


나의 수험생활은 역경과 실패의 반복이었다.

어느 하나도 쉽게 얻어지는 법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으로 쉽게 쉽게 이루어내는 것 같은데

나는 똑같은 것을 해도 항상 인내심이 극에 달 하고 나서야 얻어졌다.


수험생활뿐만은 아니다.

대학에 입학할 때도, 각종 시험을 준비할 때도, 처음 취업을 했을 때에도

지금 돌이켜보면 다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그 당시에도 항상 나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의 과정이 있었다.


분명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괜히 유명해졌을까

적어도 내 주위만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경과 실패를 반복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아무리 진흙탕에서 뒹굴어도 결국엔 빠져나오긴 한다는 것

그리고 매번 빠져나올 때마다 앞으로는 꽃길이 펼쳐지길 기대했지만, 현실은 더 깊은 진흙탕의 연속이라는 것


이제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나 보다.

내 앞에 또 어떤 진흙탕이 기다리고 있을까



나의 생각과 달리 앞으로 내가 꽃길만 걸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

부모님이다.

내가 앞으로 더 잘 먹고 잘살기 위한 걱정을 하는 것과는 달리, 부모님은 합격한 순간부터 이미 잘 먹고 잘 사는 건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이러한 부모님의 확신은 사실 나에게도 중요한 문제였다.

부모님이 지인들을 만날 때면 자연스럽게 자식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고, 직장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 중 하나다.

전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에는 부모님의 설명이 길어지곤 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좋은 곳임을 어필하려고 애쓰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씀을 드려봤지만, 부모의 마음이 원래 그런 것인가 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더 이상 나에 대해 그리고 나의 직장에 대해 어필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제는 나 스스로 앞가림하면서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셨나 보다.


또 하나의 목표라면 목표다.

부모님이 생각하는 나의 꽃길을 더럽히지 않는 것



그런 부모님과도 한 가지 맞는 게 있다.

고통스러웠던 만큼 이제는 쉽게 놓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한 번뿐인 인생, 퇴사하고 진정 내가 원하는 길을 찾아보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나처럼 원하는 분야로 재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고, SNS, 투자, 사업 등으로 아예 다른 인생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어떤 길을 선택하든 기존의 길을 가는 것보다는 훨씬 힘들다는 것이다.

새로운 길에 자리 잡기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기존의 길을 포기한 것에 대한 기회비용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겪고 나니 3년 전에 어떻게 퇴사를 결정했나 싶다.

그렇다고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 알았다면 섣불리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인생이 더 재밌는 것 같다.

앞으로 나에게 닥칠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살면서 크고 작은 다양한 결단을 내려보는 것 아니겠는가

어쩌면 도전과 고통의 연속이 내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또 빠져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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