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라 앞에서 만났다.
나는 25년 1월 17일, 오후 1시쯤 카이로 박물관 2층에서의 감정선을 여전히 기억한다.
약 두 달간 이어졌던 지중해 배낭여행 도중,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에서 만난 중국 소녀와 9일간 이집트 전역 동행을 다룬다. 그리고 약 일 년 뒤, 중국에서의 재회까지. 내가 이집트에서 중국 노래를 듣게 될 줄 몰랐지.
시간은 오전 11시 남짓.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점을 먹으며 시작한다. 기상 직후 먹기에는 다소 기름지고 느끼한 식사다.
당일 일정은 카이로 박물관을 들렸다가, 다합에서 동행을 약속한 형님 한 분과 쓰레기 마을에 다시 한 번 들리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쓰레기 마을의 세기말 정취를 한 번 더 느끼고 싶었고, 제대로 된 동굴교회를 보지 못 했던 것이 내심 마음에 걸리던 찰나였다.
그리고 익일에는 아스완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아스완 - 룩소르로 이어지는 경로를 모두 형님과 동행할 계획이었다. 당시까지는.
삼십여 분을 걸어 오전 11시 50분, 카이로 박물관에 도착한다. 사실 피라미드를 제외하고는 이집트 고대 유적에 대해 빠삭하지 않았던 터라, 박물관에 소장된 여러 유적에 관한 사전조사를 급하게 마친 직후였다. 이집트 제국의 나라답게 박물관에 유적은 이리저리 널려 있었고, 사전 정보 없이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 할 게 뻔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유치원생 시절, 선생님 손에 이끌려 억지로 구경하는 한국사 박물관처럼.
내가 생각한 방법은 챗GPT였다. 챗gpt로 전시물 사진을 찍은 뒤 정보를 물어보는 것이다. 이 방법은 사전정보 없이 혼자 박물관을 갔을 때 굉장히 유용하다. E심으로 하루 1GB밖에 구매하지 않았기에 데이터가 조마조마 했다.
소장품이 워낙 많아서 다 찍을 수도, 알아볼 수도 없다. 몇몇 관심이 가는 것들 위주로 찍었다.
그리고 이건 람세스2세의 미라다. 이집트 신왕국 제19왕조의 제3대 파라오.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강력한 파라오다. 그만큼 본인을 과시하는 것도 좋아했다. 아스완 아부심벨에 위치한 대신전도 람세스2세를 위해서 지은 것이다. 이집트 유적지를 탐방하다 보면, 람세스 2세의 흔적을 볼 기회가 많다.
성경 출애굽기에는 모세의 이집트 탈출기가 나온다. 노예 생활을 영위하는 자신의 민족들을 데리고 대탈출을 감행한다. 그 과정에서 홍해를 가르는 모세의 기적도 등장한다. 그때 등장하는, 모세를 뒤쫓는 이집트의 왕이 바로 람세스 2세라는 것이 학자들의 유력한 설이다.
그리고 이때 즈음이었나. 아마도 13시 근처, 유리로 덮인 미라 혹은 진흙색 조각 앞이었다. 전방으로는 진흙 토기들이 모여 전시된 작은 방이 있는 진열대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미라 앞에서 만났다.
짙은 남색 드레스를 입은 하얀 여자애가 일행들과 떠들며 전시를 감상하고 있었다. 총 세 명이었다.
벽도 바닥도, 전시품도, 심지어 창밖으로 비치는 시내의 전경도 모두 황토색인 카이로 박물관. 하얀 피부로 둘째라면 섭할 나조차도 태양볕에 그을려 황토에 색감을 보태던 이집트인데, 거기서 그 여자애는 유일하게 하얬다. 그래서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사방이 하얀 대리석이던 그리스의 아네테 박물관이었다면 스쳐 지났으려나.
옆에서 조금 알짱거렸다. 그 애는 일행들과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Where are you from"하고 물어봤다. 중국인인 걸 알았지만 그렇게 물었다. 외국에서 처음 본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으니까. 그 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China라고 답했다. 훗날 친해지고 나서야 들은 얘기지만, 내가 호객꾼 혹은 사기꾼인 줄 알았다고 한다. 이집트에는 워낙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 애는 영어를 못 했다. 영어를 할 줄 알냐는 영어로 된 질문에, "little"이라고 답한 게 전부였다. 나조차도 누군가 내게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으면 "little bit"이라고 답하는데, 그 'little'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영어 문외한이었다. 아마도 little 한 단어가 내포하는 가용의 범위는 굉장히 넓은 것 같다.
위챗 계정이 있냐고 물어봤다. 한때 내게도 중국인 친구가 있었다. 그때 중국인들은 카톡 대신 '위챗'이라는 메신저 어플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쓸 일이 없을 줄 알고, 정작 출국하기 직전에 지웠었는데.
하루 1GB밖에 제공되지 않는 데이터, 위챗은 200mb를 웃돌았다. 챗gpt 좀 적당히 쓸걸. 데이터가 언제 끊길까, 조급한 마음으로 계정을 만들며 어설프게 그 애 일행을 쫓았다. 카르토나주 가면에서 아크나톤 조각상까지.
그 애와 함께 하는 일행의 이름은 츌링과 첸. 첸은 일행이라기보다는, 박물관에서 만난 잠깐의 동행이었다. 츌링은 우리보다 누나였다. 나는 그들에게 다음 일정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고, 당일 오후에 아스완행 비행기를 탄다고 했다. 나는 익일 오전 6시에 아스완행 비행기가 예약되어 있었다. 일정이 겹쳤다. 츌링은 내게 동행을 제안했다. 우리는 그렇게 아스완에서 동행하기로 약속하고, 나는 먼저 박물관을 나섰다. 이미 한참을 둘러본 뒤였다.
박물관에서 혼자 나와 출구에서 연초를 태웠다. 묵직한 중동 담배를 연달아 피우는 건 이례적이었다. 연초가 다 타고 다시 박물관 안으로 향했다. 있지도 않은 '가방을 두고 나왔다'는 핑계로 보안대를 다시 통과했다. 소총 두른 보안요원에게 그런 거짓말이 잘도 나온 거지.
작지 않은 박물관에서 그 애를 다시 찾기까진 20분이 걸렸다. 우연히 만난 척. 츌링은 반가워하며, 점심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점심은 방금 먹었지만, 저녁을 미리 먹는 셈 치면 되니까. 그 애는 조심성이 없었다. 현지인이 많은 거리 한복판에서 지갑 속 지폐 다발을 꺼내곤 했다. 번역기를 통해 경각심을 일러 주었다.
시내 유명한 코샤리 집까지 그들을 안내했다. 그녀들은 아스완에서 이틀을 머무른다고 했다. 내 계획보다 하루 더 머무르는 셈이다. 하루쯤이야. 아스완이 하루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우리는 아스완 동행 일정을 계획했다. 이틀치 계획이었다.
당장 작일에도 먹었던 코샤리를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어 속에서 우리는 MBTI 얘기를 했던가. 그 애가 제발 INFP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웃기지만 조금 낙담했다. 한때 내 이상형은 ESTJ였다. "아무리 예뻐도 INFP는 안 만나야지" 그렇게 답을 정해놨었는데.
밥을 다 먹고 우리는 현지인 카페에 갔다. 카페라기보다는, 빨간 플라스틱 의자와 테이블이 도로 위에 위태롭게 설치된, 노점상에 가까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달달한 라테 같은 것은 메뉴에 없었다. 아마도 진흙 맛에 가까울 현지 커피 뿐이었다. 젖살을 그대로 달고 뒤뚱거리는 현지인 아이가 그 애에게 와서 안기었다. 그 애도 아이를 좋아했고, 아이도 그 애를 좋아했다. 오후 6시가 되어 그 애와 츌링은 공항 가는 택시를 탔다.
그때까지 그 애는 내게 말을 걸지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선글라스도 끼지 않은 그 애의 생눈을 제대로 쳐다본 건, 이로부터도 며칠 뒤다.
그들이 떠난 뒤, 나는 첸에게 그 애가 예쁘다고 했다. 그런데 너무 차갑다고. 첸도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아마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그럴 거라고, 사실은 굉장히 귀여운 애라고 했다. 에이 설마,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첸은 솔직했었다.
당시 내 블루투스 이어폰은 아카바에서 실수로 세탁기에 돌려 맛이 가 있었다. 줄 이어폰도 왜인지 고장났다. 새로운 줄 이어폰을 사야 했다.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전자기기 매장을 찾아 이집트 시내를 누비었다.
수많은 인파, 5분이 멀다 하고 말을 거는 호객꾼들, 귀청이 나가도록 내지르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 나를 향하는 시커먼 매연, 공기에 묻은 고얀 흙 냄새. 바닥에는 정체 모를 구정물들이 고여 있는 카이로 거리.
들떠있었다. 장장 한 시간이 넘도록 시내를 누비면서도 뭐가 그리 기분이 좋았을까.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명확히 해체할 수가 없다. 일몰의 이스탄불에서 갈라타 다리를 지날 때, 참르자 언덕에서 비를 맞으며 야경을 볼 때. '당장 내일 죽어도 여한 없겠다'던 그때 감정의 고양됨을 나는 어찌 혼란한 카이로 거리에서 느낄 수 있었을까.
타들어가는 연초를 한 손에 쥔 채, 횡단보도라곤 없는 타흐리르 광장의 몇 차선을 지나며, 이어폰을 흥정하고 나일강 스타벅스로 혼자 향하는 그 와중에도, 나에게 말을 거는 호객꾼들마다 웃으며 나는 인사를 나누었다.
이어폰을 사자마자 '곽태풍-후일담', '찰리빈웍스-우리 사랑은!, 사랑과 평안'을 반복재생했다. 매연 사이에서 수 시간을 걷던 그 시간이, 분명 평생 기억에 남을 장면이 될 것이란 직감이 있었다. 향후 귀국했을 때, 저 노래들로 당시의 장면을 빌리고 싶었다. 유감스럽게도, 셋 다 이별 노래라는 건 늦게서야 알았다.
카이로 시내의 스타벅스. 나일강 위에 있다. 이집트는 전 세계에서 스타벅스 물가가 가장 싼 곳으로 알고 있다. 금전적 부담은 확실히 덜하다.
스타벅스에 갔다가, 숙소에 들러 샤워를 하고. 그리고 택시를 타고 카이로 공항으로 향했다. 오전 6시에 아스완행 비행기를 타야 해서다. 공항에서 노숙을 하기로 했다. 새벽에 깰 건데 숙소는 사치였다.
공항 노숙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배낭여행자라면 공항 노숙은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고 생각했다. 메이플로 따지면 1차 전직관 같은 느낌. 그것도 혼란함의 대명사, 카이로 공항에서 노숙이라니.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쉬지도 못하며 젊음을 혹사시키던 8시간은 뿌듯했다.
실내에 흡연실이 없었다. 공항 경비대 사무실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담배를 피고는 했다.
카이로 공항에 도착한 밤 11시부터 비행기에 몸을 실은 오전 8시까지, 나는 단 1분도 잠을 자지 못했다.
2시간 남짓 비행을 마치고 아스완에 도착했다. 츌링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시간이 얼추 맞으니 함께 아스완의 '필레신전'을 보러 가자는 제안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넷의 단체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