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아스완. 필레신전

by 별거없음

2025.01.18 이집트 아스완



SE-02e4ba42-4af8-4a2d-891c-6df8001ae1bd.jpg 필레신전에서





아스완에서는 람서스2세 과시욕을 상징하는 아부심벨이 가장 유명하다. 그 외에 필레신전, 미완성 오벨리스크 정도이다. 나는 당초 아부심벨만 보려고 했으나, 동행과의 일정이 맞았던 관계로 필레신전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아부심벨은 익일에 들리었다.


필레 신전은 툭툭을 타고 20분 남짓이면 도착한다. 다만 아부심벨은 편도만 4시간, 왕복 장장 8시간의 대장정이다. 마을 버스를 이용하거나 택시 대절 혹은 단체 밴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나와 동행은 단체 밴을 흥정하여 왕복했었다.


18일 필레 신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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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공항에서 노숙을 거친 뒤, 아침 6시 비행기를 타고 아스완으로 뜨는 중이다. 당초 6시에 이륙 예정이었으나, 어째서인지 실제 이륙은 8시에 이루어졌다. 아스완은 11시를 넘겨 도착했다.




아스완 공항에서 휴대폰에 데이터가 터지기 시작했을 때, 동행 중 한 명인 츌링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우리는 필레신전에 갈 건데 너도 합류할 거냐"고 묻는 연락이었다.




공항에서 노숙하며 한숨도 자지 못 했고, 공항에서 아스완 시내까지는 거리가 꽤 있기 때문에 재차 거절했다. 하지만 츌링은 연이어 동행을 제안했고, 시간이 얼추 맞을 듯하여 필레신전까지 동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제대로 자지도, 씻지도 못 한 나는 도착하자마자 그 애와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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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완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다만 기사들끼리 담합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혼자서 이용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어차피 아스완 공항에서 내리는 승객들은 모두 시내로 향할 예정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동행을 구해 동승하면 금전적 부담을 확실히 줄일 수 있다.




나는 공항에서 친해진 중국인 셋, 그리고 프랑스인과 동승을 하였다. 위 사진은 내가 탑승했던 택시. 기사는 꽤나 유쾌했다.




택시 값을 흥정하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내 외향성을 끌어모아 협상을 진전시키었다. 빈약한 아랍어를 섞어가며. 이 코믹한 광경을 지켜보던 중국인은 "넌 어떻게 그토록 성격이 항상 밝냐"고 물었다. 뭣도 없는 외국인이 홀로 외지에서 살갑게라도 굴지 않으면 어떻게 생존을 하겠는가. 외향과 내향을 아우르는 유동성은 항상 최선의 전략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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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KFC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전날 카이로 공항에서 노숙을 했던 나는, 숙소에 짐을 던져둔 채 아무 택시나 잡아 그곳으로 향했다. 전혀 달래지 못한 피로보다, 숙소에 던져진 귀중품보다 노숙에 꼬질해졌을 얼굴이 더 신경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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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레신전은 나일강 한 가운데 작은 섬에 위치해있다. 신전에 가기 위해서는 배를 빌려야 한다.




나일강 선착장에서 한참의 흥정을 거친 뒤 도착한 필레신전. 작은 카메라를 든 채 홀로 사진 삼매경에 빠진 츌링을 뒤로 하고, 그 애와 나는 둘이서 신전을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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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츌링과 함께 사진을 찍고는 했다. 그 틈을 빌려 나는 홀로 떨어져 나와 그늘 아래서 담배를 태웠다.




옆자리 경찰관에게 라이터를 빌렸다. 과분한 반가움을 표하던 그와 나는 서로 담배를 바꾸어 태우곤 했다. 그러자 경찰관은 내게 사진 명당을 안내해주겠다며 따라오라 손짓하였다.




미처 다 태우지 못 한 담배를 한 손에 쥔 채 그를 따랐다. 그는 쇠사슬로 막힌 금지구역으로 나를 데려갔다. 이내 그 쇠사슬을 풀어 들어올렸고, 그 안까지 나를 안내했다. 그리곤 나일강을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필레신전 구경을 마치고 나와 츌링, 그리고 그 애 셋은 다시 육지로 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우리 배를 곧장 찾을 수 없었고, 선착장 위에서 십여분을 기다렸다.




선착장은 넓은 철제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물 위에 띄운 구조물과 뭍은 작은 다리로 이어져 있었다.






내가 구조물에서 우리의 배를 찾고 있을 때, 다리 위에 있던 그 애가 나를 불렀다. 내가 뒤돌아보자 그 애는 "You smoke?"하고 물었다. 신전에서 경비원과 담배 태우던 모습을 본 거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Sometimes"라고 답했다. 그리곤 "and you?"라고 되물었다. 그녀도 "Sometimes"라고 답했다. 이후로 우리는 종종 먼지나 구정물이 고인 이집트 시내 구석에서 함께 담배를 태우고는 했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 시와에서 우리가 작별한 직후 나눈 장문의 대화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저 순간에 그녀는 내게 반했었다고 고백하였다.




우리가 앞으로 설령 다시는 못 보게 될지라도, 서로의 기억이 흐려질지라도, 나일강 위에서 햇살이 날 비추던 그때의 모습은 잊지 못 할 것 같다고 하였다.




아마도 살아 생전 그 애를 다시 마주하지는 못 할 듯하다. 정말로 잊지 않을는지. 요새 간혹 궁금하다. 저번주까지는 분명 바람이었던 것 같은데, 점점 순전한 호기심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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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레 신전에서 복귀할 때는 현지 버스를 이용했다. 택시보다 훨씬 저렴하다. 신전 입구를 지키고 있는 무장 군인들과 친해져서 알게 된 정보다.




그리고 나일강을 거닐었다. 한 발자국을 걸을 때마다 호객꾼들이 모인다.

나일강 저변을 걷던 도중, 아스완 대학교 한국어학과에 다니는 학생을 만났다. 내가 한국인인 걸 알아본 그가 내게 말을 걸어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 많은 학과 중 왜 하필 한국어학과를 택했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삼성이나 LG 등 한국 대기업들이 이집트로 진출하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이집트도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한국인들은 참 똑똑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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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까지의 거리가 꽤 돼 늦게서야 먹은 저녁이다.




츌링과 그 애, 그리고 나의 동행은 당초 룩소르까지만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익일 아부심벨을 들린 뒤, 룩소르에서의 2일 일정을 소화하면 끝. 앞으로 약 3일 정도 동행이 남았던 셈이다.




저녁을 먹던 도중, 그 애가 내게 말했다. "우리는 후루가다를 갔다가 시와를 갈 건데, 너도 같이 가자"




나는 거절했다. 룩소르까지만 들렸다가 그리스로 향할 생각이었다. 동행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융통성이라곤 없던 나는 내 일정이 더 중요했다. 낯선 환경에서 나를 더 가혹하게 몰아넣는 것이 여정의 목표였지, 후루가다에서 편하게 휴양이나 하자고 지구 반대편까지 온 게 아니었으니까. 후루가다 3박 호텔을 결제하기에는 금전적 요인도 컸다.




그 애는 이내, 후루가다에서 3일치 나의 호텔을 결제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그 애가 나와의 동행을 그렇게까지 고집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당장 작일까지만 해도 차가웠는데.








"내가 영어를 잘하니까, 여행하기 편리해서 그런 거냐"는 조금 찌질한 질문을 했다. 그녀는 아니라며, 나와 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어설픈 영어 실력으로 단어를 더듬으며 "I like your smile"이라고 했었다.






그렇다고 자존심이 있지, 금전적 신세까지 질 수는 없었다. 거듭되는 그 애의 요청을 애써 거절하면서, 우리는 익일 아부심벨 계획을 세웠다. 아부심벨로 가는 미니 밴은 새벽 4시에 출발한다. 그러니까, 새벽 3시에는 기상해야 하는 셈이었다.










필레신전을 그 애와 다녀간 이후로 사실 나는 중국어를 메모해서 다녔다. '좋은 아침', '가자', '왜?'와 같은 짧은 문장들. 그 종이는 몇 번이나 접혀 해졌지만, 몇몇 문장은 여전히 입에 붙지 않았다. ‘너와 있어서 좋다’는 문장의 발음을 항상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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