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아스완. 아부심벨

by 별거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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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보다는 몽롱에 가까운, 꿈 같은 하루였다.



2025.01.19, 아스완 아부심벨.



아스완에 가는 목적은 8할 이상이 아부심벨이다. 람세스2세의 신전. 피라미드가 지어지고 약 1,500년경 뒤에 지어진 신전이다. 과시욕이 강했던 람세스2세는 피라미드를 부러워했다. 자신도 피라미드처럼 거대한 상징물을 지니고 싶어 만들어진 것이 아부심벨이다. 10월21일, 람세스2세의 생일이 되면 아부심벨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고 한다. 다만 수몰 위기에 처한 아부심벨을 육지로 옮기면서 하루의 격차가 생겼다.




아부심벨은 시내에서 편도만 4시간에 육박하는 곳이다. 아부심벨에 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낡고 값싼 현지 버스를 타거나, 개인 택시를 대절하거나, 업체가 운영하는 미니 밴을 예약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나와 동행은 세번째 방법을 택했다. 현지 버스는 싸고 시간대가 좋지만 탑승 컨디션이 걱정되었고, 개인 택시는 셋이서 대절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미니 밴 예약은, 아스완 시장 한복판에서 호객꾼에게 예약하였다.



다소 합리적인 가격으로 흥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새벽 4시에 출발한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그러니 새벽 3시에는 기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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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9일, 새벽 3시 6분의 아스완 나일강.



미니 밴 집합 지점과 내 숙소는 도보로 약 20분의 거리가 있었다. 더군다나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어 개켜야 했으므로 내 기상 시간은 두 시였다.



정체 모를 외국인들이 자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전등을 키지도 못한 채, 그들이 깰까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씻는다. 식사는 사치이기에 빈 속으로 옥상에 오른다. 제대로 된 빨랫줄이 없어 지저분한 땅바닥에 떨어진 몇몇 속옷을 줍고, 나머지 빨래를 걷는다. 그리고 나일강 전경을 보며 담배를 태운 당시의 분위기는 몽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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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길거리에는 떠돌이 개가 많다. 다소 정적인 다합의 개들과 다르게 이들은 치열하다. 동적이다. 여유로운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다합의 한량 개, 그리고 이따금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먹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스완의 떠돌이 개는 대비된다.



시내 곳곳에서 나를 무섭게 쫓는 개들의 돌발행동을 대비해야 한다. 이른 새벽 허기를 달래기 위해 샀던 빵 봉투를 뜯었다.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서는 빵쪼가리를 멀리 던져 개들을 유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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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와 츌링은 늦지 않게 집합 장소에 도착했다. 벤치에 걸터 앉아 그 애와 담배를 피고 있다보면, 우리를 태울 미니 밴은 도착했다.



밴은 새벽 네 시에 출발했다. 에어컨도 없이 곰팡이 냄새가 눅눅이 깔린 밴. 해도 뜨지 않았고, 동승하는 관광객들도 피로에 절여 눈을 뜨지 못 했다. 밴은 한동안 고요했다.



이내 고요함이 무색하게 밴 내부 조명은 이따금씩 켜지고는 하였다. 현지인들이 떠드는 아랍어가 귀를 때렸다.



내 옆자리에는 그 애가 앉아 있었다. 요르단 아카바에서 침수된 버즈 대신, 카이로 시내에서 급히 샀던 그 줄 이어폰을 우리는 한 짝씩 나누어 끼었다. 나는 내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는데, 여행 중 질리도록 들었던 Until I found you나 A Thousand years가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온통 외국 노래라 그 애는 가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 했을 것이다.



무슨 용기였는지는 모르겠다. 피곤해하는 그녀에게 내 어깨를 탁 치며 말했다. "you can sleep". 이내 그 애는 내 어깨에 기대어 잤다. 어깨가 흔들릴까 숨을 죽였다.



선 이어폰으로 재생한 노래는 십여분이 재생되다 이따금씩 중간에 끊기고는 하였다. 그때마다 손을 움직였다. 조심스럽게, 잭을 뺐다가 다시 꼽으면 노래는 다시 흘렀다. 음정이 높은 노래가 재생되면 볼륨을 낮췄다. 음정이 낮은 노래는 볼륨을 키웠다. 손이 바빠 잠에 들지 못했다. 아부심벨에 닿는 네 시간동안 창 밖 사막을 바라보았다.






눈을 잠깐 감고 있으면, 잠에 든 것인지 들지 않은 것인지 헷갈리는 렘수면 상태가 계속 되었다. 꿈인지 무엇인지, 눈을 감으면 재생되지만 눈을 뜨면 이내 휘발되고야 마는 얕은 서사 같은 것들이 반복되었다. 눈을 감으면 찾아오는 얕은 꿈은 무의식의 상징답게 비현실적이었다. 눈을 뜨면 웬 하얀 애의 머리가 짓누르는 왼쪽 어깨의 무게감 역시 비현실적이었다. 창가가 비추는 광활한 사막과 일출은 그렇다고 현실적이었을까.



아부심밸로 향하는 네 시간은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이 없이 몽롱하였다. 그토록 몽롱하게 달려 도착한 곳은 파라오 람세스 2세가 건설한 신전이었다. 25년 1월의 19일은 어쩌면 전부가 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역시나 작별한 뒤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애는 내 어깨에 기대는 게 도리어 불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부심벨 이후에도 장거리 버스를 탈 때면, 그 애는 내 어깨에 짐짓 기대어 자는 척하고는 했다.



왜, 우리는 모든 것들을 정작 작별하고 난 뒤에야 알게 됐을까. 한때 나는 그것을 원망하고는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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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한 몸을 이끌고 새벽에 집합하여, 장장 4시간을 달려 도착한 아부심벨. 이집트 전역을 여행하다보면, 고대 유적에 무감각해진다.



카이로에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혹은 사카라 피라미드까지 거치어 카이로 박물관에 들르고, 아스완에서 필레신전과 아부심벨까지 보았다면, 아마도 룩소르에서 느끼는 감흥은 피라미드를 보며 느끼었던 압도적인 무언에 비해서는 다소 사소할 것이라고 감히 예측한다.



혹여 아스완보다 룩소르를 먼저 들렸다면... 아부심벨이 지닌 역사적·상징적 의미를 되새기거나 혹은 방문 자체를 특별히 기념할 것이 아니라면, 투입되는 에너지에 비해 아부심벨이 주는 경이감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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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심벨 신전 앞에서 떠돌이 개는 자고 있었다. 그걸 찍는 나를 그 애가 찍었다.



아부심벨에서 아스완 시내로 돌아올 때는, 아부심벨행의 역순이었다. 똑같이 피곤하고 피로하고 몽롱했다. 그리고 비현실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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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고기와 비둘기 고기. 밥을 먹는데 호주인이 자꾸만 말을 걸었고, 웬 떠돌이 고양이는 자꾸 내 무릎에 올라와 앉았다.



마땅한 일정이 없던 우리는 식당에서 시간을 죽였다. 어느새 해는 졌고, 이슬람교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은 시내에 퍼졌다.



맥주를 마시던 그 애는 내게 다시 한 번 요청했다. 룩소르를 거쳐, 후루가다와 시와까지 함께 가자고. 아마도 삼십여 분을 더 거절했던 것 같다. 나는 동행을 하게 되면, 아마도 그리스를 향할 여비가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양자택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잘 절약하면 어쩌면... 동행을 마치고 그리스까지 갈 수 있을 듯했다.






그렇게 우리의 동행은 4일에서 9일로 늘어났다. 후루가다에서의 호텔 3박을 그 애가 예약해줬다. 큰 신세를 진 거다. 언젠가는 갚고 싶은 신세였는데.



모쪼록 9일간의 동행은 다분히 서정적으로 서술되었고 되겠지만, 아마도 그건 미련이 아닌 흐려지는 여운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여지없이 추억이 된 1월을 미련으로 남기기에는 어느새 한 해도 절반에 가까워졌기에. 블로그에 쓰인 동행 서사는 아마도 내 마지막 궁상이 되겠지. 분명히 언젠가는, 여행기에 쓰인 그 애의 흔적을 통째로 들어내야만 하는 날도 올 것이다.




익일에는 룩소르로 향한다. 룩소르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다만 거기서는 그 애와 동행하지 않았다. 일정이 겹친, 다합에서 친해진 형님과 시간을 보냈다. 우연히 친해진 룩소르 이집션의 보트를 나일강에 띄웠다. 보트에서 맥주를 마시고, 보트 지붕에 올라 담배를 태우고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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