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0 - 01.21. 이집트 룩소르.
아스완에서 2박을 머물렀던 값싼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찍은, 이른 오전의 나일강 사진.
아스완에서 룩소르로 향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차, 하나는 택시. 우리는 세 명이기에 택시를 대절했다. 황량한 사막을 달리면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체감상 3시간 정도면 룩소르에 도착했던 것 같다.
룩소르의 선착장에서 마주한 그 애의 입술은 부르트어 있었다. 아마도 사막의 기후가 건조해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출발하기 전에 약국을 들리어 그 애의 약을 샀다. 하지만 동행을 마치기까지 그 애의 입술은 호전되지 않았었다.
별개로 이집트의 고속도로 상태는 별나다. 도로에 구분선이 없어 가까이 트럭이 스쳐 지나가거나, 도로 중간에 정체 모를 식물을 뒷칸에 가득 채운 자전거가 지나다니고는 한다.
룩소르에 도착해 츌링과 그 애의 호텔 체크인을 도와준 뒤, 혼자 빠져 나왔다.
룩소르에서 만큼은 남 신경 쓰지 않고 혼자서 온전히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는 웬 흑인 랩퍼의 그래피티 혹은 캐리커쳐가 크게 그려진 밥 말리 게스트하우스였다. 알고 보니 밥 말리는 아프리카 출신의 레게 선구자라고 한다.
배낭을 맨 체 동행의 숙소에서 내 게스트하우스까지 걸었다. 중간에 룩소르 신전을 들렸지만, 사카라 피라미드에 아부심벨까지 보고 온 내게 별다른 감흥을 안겨주지는 못 하였다.
내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13시를 넘어가는데, 왕가의 계곡 및 하트셉수트 장제전은 오후 4시까지 운영한다.
밥 말리 게스트 하우스에서 카운터를 맡고 있는, 목소리가 굉장히 묵직한 흑인 직원의 도움을 받아 일정을 짜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뭐 놀리려는 게 아니라, 진짜로 목소리가 저음의 정도를 넘어 굴착기로 내핵까지 파고 든 수준이라 순간 스타워즈 세계관에 들어온 줄 알았다.
사진은 그 흑인 친구가 준 티. 주위에 파리가 많이 날아다녔다.
택시를 타고 왕가의 계곡에 도착하니 시간은 14시를 넘겼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끊고, 왕가의 계곡 입구까지는 약 20여 분을 걸어야 한다. 비용을 지불하고 카트를 탈 수 있지만 그마저도 돈이 아까웠다. 당초에 몸으로, 젊음으로 때우자며 출발한 배낭여행이었으니까.
시간이 촉박했던 나는 계곡 전체를 뛰어다녔다. 1월임에도 불구하고, 계곡은 마땅한 그늘이 없이 땡볕이었다.
왕가의 계곡에는 수십 개에 달하는 무덤이 있다. 자그마치 1000이집션을 능가하는 프리미엄 패스를 끊은 게 아니라면, 그중 딱 세 곳만 들어갈 수 있다.
나는 무덤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잘 터지지도 않는 데이터를 꾸역꾸역 기다려가며, 나무위키로 겨우 수집한 정보로 무덤을 골라 들어가고는 하였다.
거의 유일하게 도굴 당하지 않은 투탕카멘의 무덤도 들어가고 싶었으나, 들어가려면 별도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했다. 200파운드 정도의 뇌물을 바치면 들어갈 수 있다는 풍문을 들은 건 이후의 얘기다. 그렇게 15시10분까지 왕가의 계곡 투어를 마치고, 하트셉수트 장제전으로 향했다.
하트셉수트 장제전은 웅장하지만, 역시나 큰 감흥은 없다.
관람을 마치고 그냥 좀 걷고 싶었다. 요즘 너무 편하게 여행한다 싶어서.
하트셉수트 장제전에서 시내까지는 걸어서 약 2시간을 가야 하고, 마땅한 인도가 없어 도로를 밟아야 한다. 그래도 걸었다. 즐겨듣는 노래를 들으며, 살면서 다시는 오지 않을 이국의 풍경을 걷는 것은 놓치기에 너무 아까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객기가 아니었다면 건지지 못 했을 사진도 덕분에 건지고는 한다.
한 시간을 조금 넘게 걸었을까, 다합에서 알게 되어 우연히 룩소르까지의 일정이 겹친 형에게 연락이 왔다. 한국인 두 명과 동행을 하고 있는데, 합류할 거냐고 물었다. 우리 넷은 저녁을 먹고, 형이 묵는 숙소의 주인장 아들내미가 운행하는 보트를 타고 승선파티..?를 벌였다.
룩소르에서 마약 상인을 만나고, 한국어학과 학생들도 만나고, 동행 일부가 벌룬투어 사기를 당해서 돈을 돌려받고 등... 중간중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생략...
은근히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보트 옥상에서 담배도 피웠다. 담배를 피우며 동행 중 한 명에게 물었다. 여행하다 만난 중국인 여자애가 있는데, 우리가 과연 여행을 마친 뒤에도 연락이 이어질 것 같냐고, 여행이 끝나면 서로를 잊게 되냐고.
그 동행은 아마도 그럴 거라고 답했다. 여행 중에는 빠르게 친해지지만, 현실로 돌아가면 쉽게 잊혀진다고, 본인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하였다. 그런 말들을 들으며, 예외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의 보트를 마주보며 오던 맞은편 보트에서는 결혼식 뒷풀이가 열리고 있었다. 신부와 신랑이 복장을 차려입고, 노래를 크게 튼 채 춤을 추고 있었다.
우습게도 이 날은 조금 취해서, 혼자 숙소에 돌아가는 길거리에서 넘어졌다. 이집트여도 쪽팔린 건 마찬가지더라.
2025.01.21 룩소르 - 후루가다
다시 츌링과 그 애와 만나 후루가다로 향하는 날이다. 버스로 약 다섯 시간 걸린다. 먼저 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나는 버스 맨 뒷자리를 좋아한다. 우리 셋의 자리를 맨 뒤로 예약했는데, 츌링은 차멀미가 심해 혼자 앞자리로 떠났다. 나와 그 애 둘이서 옆에 앉아, 좌석에 딸린 스크린으로 영화를 봤다. 영화 제목은 'It'이었다. 광대가 나오는 그 공포 영화다.
그 애에게 공포 영화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공포 영화'가 영어로 뭔지 몰랐던 그 애는, 손가락을 고양이처럼 웅크린 채 입으로 "우으으~"소리를 내며 유령을 흉내내면서 "I like"라고 답하였다.
스크린은 이어폰을 연결해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막도 없어서, 우리는 소리도 자막도 없이 영상만 보았다.
It을 보다가, 앵그리버드를 보다가, 게임을 하다가, 우리는 다시 이어폰을 한 짝씩 나누어 낀 채 노래를 틀었다. 그러다 그 애는 이내 내 팔을 감싸고 다시 안기었었다.
내가 아는 중화권 노래는 '월량대표아적심'과 '몽중인' 두 개 뿐이었다. 우리는 버스에서 그 노래를 같이 들었는데, 이후로도 이집트와 그리스, 한국에서 혼자 종종 그 노래를 듣고는 하였다. 한국인인 내가, 이집트나 그리스에서 중화권 노래를 그렇게 반복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 했었다.
나는 여행 중에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귀국 후에도 그 노래에 당시의 풍경과 분위기를 담을 수 있기에 그렇다. 그러나 월량대표아적심은, 아련함을 넘어 서늘함을 느꼈기에, 한동안 듣기를 피하곤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