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후루가다에서 시와행까지

by 별거없음

2025.01.21 - 01.24




후루가다에서 3일을 머물렀다. 3일간 나와 일행도 호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202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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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각에서야 후루가다에 도착했다. 호텔 데스크와 간단한 통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했다. 그 애가 내 숙소를 대신 결제하는 동안 어색하고 뻘쭘하게 옆에 서있었다. 당초 '혼자 하는 거지여행'이 본래 여정의 테마였다. 짠내나는 여정만이 주는 감동과 경험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행이 생기니 절약도 멋쩍음이 되었다.



이미 어두워졌기에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근처에서 일행들과 저녁을 먹었다. 그 애는 스테이크를 먹었다. 츌링은 토마토 파스타와 샐러드를 주문했다. 나는 제일 저렴한 치킨 파스타를 시켜 먹었다.



웃기지만, 그 애의 진짜 나이를 이때 처음 알았다. 처음에 25살이라길래, 나는 나보다 두 살 어린 줄 알았다. 중국도 동아시아권이기 때문에, 만 나이가 아닌 한국 나이랑 셈법이 비슷할 줄 알아서다.



그런데 아니었다. 매우 앳되어 보이는 얼굴과 달리, 그 애는 99년생으로 나와 동갑이었다. 더군다나 나보다 생일도 3개월 가량 빨랐다. 그 애는 내게 누나라 부르라며 농담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 애는 마지막 연애가 6년 전이라고 했다. 이유를 묻자 어색한 영어로 "because... My ex(boy friend)... heart broken"이라고 답했다. 의역하자면, 마지막 연애에 의한 상실감 때문에 그 이후로 연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애는 내가 바람둥이 같다고 했다. 그건 아마도, 언어가 통하지 않기에 표정과 행동으로만 마음을 전해야 하는 순간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럴 것이다. 그러려면 진중하기보다는 밝고 능글맞아야 했다. 그런 모습이 다른 이성에게도 가볍게 다가가는 이미지로 비추어졌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저녁을 먹고 호텔에 돌아왔다. 집을 떠나온 지 꽤 돼서 머리가 많이 길었었다. 데스크에서 문구용 가위를 빌려 혼자 이발을 했다. 원래 집에서도 자주 혼자서 이발을 한다. 타일 바닥에 흩뿌러진 머리카락을 샤워기 물줄기를 이용해 배수구로 몰았다. 화장실 문 밖으로 물이 샌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았다. 좁은 방 안이 온통 물로 가득 찼다. 쓰레받기와 밀대를 이용해 방 안의 물을 화장실 배수구로 밀어내었다. 물은 어느정도 빠졌지만, 내 방은 다음 날까지 한동안 습했다.







2025.01.22



어두워져서야 도착한 작일에는 몰랐던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호텔 내부에 수영장과 썬베드가 있고, 해변과 바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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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썬베드에 누워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옆 자리에는 그 애가 누워 있었는데, 우리는 구태여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몇 번씩 번역기가 서로 오갔다. 그러나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골몰히 생각해보면 나기야 하겠지만, 이제 와서 굳이 그럴 필요성은 못 느낀다.



이 날은 일행들이 우연히 만난 다른 중국인 일행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들이 뭐라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 그 애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인프피였던 그 애는 그다지 친화적인 성격은 아니었는데, 아마도 다른 중국인 일행과 대뜸 섞여 시간을 보내는 게 썩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애는 밥을 먹다가 도중에 혼자 일어나 나갔다. 나도 따라 나갔다. 그 애는 혼자서 멀찍이 걸어갔고, 나는 멀찍이 쫓았다.








그러다 우리는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맥주를 한 캔씩 마셨다. 어설픈 영어는 영어대로, 문장이 길어진다 싶으면 번역기를 섞어 우리는 한동안 대화했다.



그 애는 익일에 함께 배를 타고 섬 투어를 가자고 하였다. 츌링과 그 애, 그리고 저녁을 함께 했던 중국인 무리가 함께 가기로 했다던 그 투어다. 한화로 약 2만 원 가량이었는데, '굳이' 싶었던 나는 헬스장에서 푸쉬업과 스쿼트나 하고 싶어 거절했다.




그 애는 재차 내게 권유했다. 짧은 시간 나와 부쩍 가까워져 내가 편했던 덕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같이 가는 중국인 무리들 사이에 끼기에는 마냥 어색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일행들과 떨어져, 우리 둘이 다니자고 그 애는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일행들을 신경 쓰지 말자고, 사진을 찍으며 놀자고. 그 애는 나와 함께 섬에 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나는 재차 거절했다. 이만 원이 큰 돈은 아니지만, 예상치 못하게 길어진 여행 일정 때문에 불필요한 지출은 최대한 절약하는 게 당시의 목표기도 했다. 나는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까지 가야 했다.






내가 돈을 이유로 거절하자, 그 애는 "나는 25살(중국기준. 그 애는 나와 동갑이었다.)인데 벌써 성공했는데 왜 너는 성공 못 했냐?"며 농담을 던졌다. '성공'의 중국어 발음은 아마도 '쳥공'인 듯하다. 그 애는 '쳥공'을 발음하는 동시에 왼쪽 팔을 들어 올려 팔꿈치를 90도 굽힌 채, 알통을 보이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그러니까, 그 포즈가 뭔가 성공한 듯한, 능력을 보이는 듯한 바디랭귀지라고 생각했나 보다.



"한국 남자들은 2년 동안 군대에 가야 한다. 그래서 졸업도, 취업도 늦어서 그렇다. 나는 좋은 대학을 나왔고 똑똑해서 금방 취업할 거"라며 해명을 하고, "그럼 너는 25인데 영어를 왜 그렇게 못 하냐?"며 찌질한 반문을 했다. 그 애는 웃었다.



짧은 티격태격이 끝나고, 그 애는 내가 함께 섬에 가지 않아서 슬프다고 했다. "아임 소 새드" 혹은 "하트브로큰"이라고 표현했다. 6년 전 마지막 애인과 헤어진 이유를 설명할 때 쓰던 그 표현은 설득력이 있었다. 우리는 익일 함께 섬을 가기로 약속했다.



하여간 돈, 그놈의 돈이 항상 문제였다.





2025.01.23. 후루가다에서의 마지막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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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새. 그 애가 찍어달래서 찍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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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우리는 섬에 가지 못 했다. 이른 오전, 날씨가 좋지 않아 배편이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냥 하루종일 선베드에 누워 있었다. 나는 스노쿨링 장비를 빌려 바닷물에 몸을 담구고는 하였다. 맹독을 품은 푸른점가오리를, 다합에 이어 여기서 또 봤다.



저녁 시간에는 근처 대형마트에 갔다. 거기서 장을 봤다. 나는 "한국 라면을 해주겠다"며 호언했다. 호텔의 인덕션 상태가 썩 좋지 않아 한동안 점화가 되지 않았다. 그 옆에서 그 애는 '아임 헝그리'를 연달아 외치고 있었다.



데스크를 불러 해결해 겨우겨우 끓인 라면은 맛이 덜했다. 한국에서 쌓은 20여 년의 라면 경력이 무색했다. 일행들에겐 처음인 한국 라면을 이런 식으로 대접해야 한다니, 아쉬웠다. "원래는 이것보다 훨씬 맛있다"며 궁색한 변명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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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는 후루가다의 밤 풍경과 조명들의 빛 번짐, 그리고 한 가운데에 웬 고양이가 앉아 있다. 나는 이 날 혼자 썬베드에 앉아 술을 마셨다. 10도에 달하는 사카라 맥주 몇 병을 비웠으니, 꽤나 취할 작정이었던 거다.



후루가다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이제 익일이면 카이로를 거쳐 시와를 가고, 시와에서 하루를 보내면 우리의 동행은 끝이다. 버스에서 그 애와 나누었던 온기가 무색했다. 버스에서 내리고 나면, 우리 사이에 감정적 교류는 없었다. 시와까지 거쳐 작별하면 언젠가 그 애를 다시 볼 수는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시간은 금세 흘렀다. 이어폰을 끼면 파도 소리도 묻혔다.



사진에 찍힌 고양이 외에도, 낯선 개가 내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들에게 내 포카칩을 조금씩 나눠 주었다. 고양이와 개, 그리고 나 셋이서 후루가다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2025.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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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얘는 후루가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고양이인데, 나는 동물을 정말 좋아하고 사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살면서 이렇게 기괴한 고양이는 정말이지 처음 봤다.



물론 외모야 본인의 선택이 아니고, 먼지 섞인 이집트의 뒷골목을 떠돌아다니는 길고양이로서의 숙명에 저 고양이 스스로의 의사야 당연히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지만, 정말 미안하게도 나는 저 고양이를 5초 이상 쳐다보지 못 했다. 정말 무서웠다.



정류장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그런데 저 고양이는 계속 나를 쫓아왔다. 종종걸음으로 쫓던 고양이는 나를 지긋이 쳐다보며 울음소리를 내었다.





튀르키예의 이스탄불과 요르단, 이집트를 혼자 거치며 다양한 사건들을 겪었다. 하지만 '공포스럽다'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순간 중 하나로 내게 자리 잡았다. 나머지는 요르단 페트라 동굴 속에서 기괴한 짐승의 울부짖음을 들었던 때, 다합에서 스쿠버다이빙을 마치고 한동안 난청 증상이 심했던 때, 카이로 스타벅스를 향하던 도중 인적 드문 길에서 웬 흑형이 나를 째려보며 다가왔던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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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우리의 목적지인 시와를 가려면 카이로에서 버스 혹은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 그러니까, 반드시 카이로를 경유지 삼아야 하는 셈이다.



그 애와 츌링은 후루가다에서 카이로행 비행기를 탄다고 하였다. 굳이 돈 쓰기 싫었던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를 예약했다. 후루가다에서 카이로까지는 5시간 걸린다. 우리는 카이로에서 만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나는 버스를 예약하기 위해 카이로 정류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단체 탑승객이 있었던 건지, 유일한 시와행 버스의 자리가 없었다. 한동안 방법을 모색하다가, 우리는 결국 택시를 타기로 하였다. 카이로에서 시와까지는 택시로 10시간이 걸린다.



택시를 기다리던 와중에, 시와로 향하는 다른 중국인 남성 '카이'를 만났다. 사람은 많을수록 택시비가 분담되기에 우리는 기꺼이 그의 합류를 승낙했다. 이름이 카이였나 케이였나? 아무튼 고전문학 데미안에서 "데미안이 언급하는 '카인과 아벨'의 케인과 이름이 매우 비슷하다~" 이렇게 혼자서 생각했던 게 기억이 난다.






내 옆자리에는 그 애가 앉아 있었다. 시와행 택시 뒷자리서 몸을 꾸긴 반나절 내내, 나는 그 애의 손 잡기를 망설였다. 그래도 아스완에서 내 어깨에 기댔었잖아, 후루가다 버스에서는 내 팔에 안기기도 하였는데. 그 애가 내 팔에 안길 때면, 나는 괜스레 내 소매를 걷어 올리고는 하였다.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면, 은근슬쩍 손 정도는 잡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두 시간 동안 하였다.



그렇게 두 시간 십 여분을 넘길 때 나는 그 애의 손을 잡았다. 시와로 향하는 10시간 동안 내가 일 초도 눈을 붙이지 못 한 것은, 포장되지 않은 이집트의 도로 상태도 한 몫을 했겠지만, 아마도 내 왼손에 닿는 체온이 신경쓰인 탓이 컸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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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좌석에 앉아 10시간을 달렸다. 우리는 시와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전 7시를 겨우 넘겼고, 인근은 조용했다.



동이 막 터오르는 시와의 하늘은 핑크빛이었다. 찌부둥한 머리로, 일 분을 채 붙이지 못 한 눈을 애써 떠가며 감상에 젖으려는 찰나였다.



허벅지를 감싼 바지춤에 뾰족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들개의 이빨이었다. 멀리서 짖던 들개가 기어코 달려와 내 허벅지를 문 것이다. 중동 지역을 여행하며 보았던 모든 떠돌이 개는 크게 짖을지언정, 달려와 문 적은 없었는데. 시와의 개들은 꽤나 호전적인가 보다.



그 개를 쳐다봤다. 호기롭게 덤비던 3초 전이 무색하게 금세 줄행랑을 쳤다. 다행히 바지가 미끄러워 이빨이 살까지 닿지는 않았다. 조심해야지. 그래도 개가 덤빈 게 셋 중에 하필 나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5일부터 26일까지 시와에서 머무른다. 9일간 동행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동행도 다음 편에서 마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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