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5. 이집트 시와
시와는 이집트의 산골 마을이다. 수도 카이로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목욕탕과 소금호수가 있기로 유명하다. 앞선 목적지와 달리, 도시라기보다는 마을에 훨씬 가깝도록 작다.
유쾌한 장소는 아니었다. 시와의 인도와 차도는 구분이 없는데, 도로는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다. 그 작은 마을에 교통량은 왜 그렇게도 많은지.
말과 바이크나 차량, 관광객들을 실은 수레가 이따금씩 내 옆을 스치면, 내 키의 두배도 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피할 방도라곤 없었다. 코를 애써 가리고 눈을 찡그리기를 반복하다보면 금세 지쳤다. 흙먼지와 시와는 떼놓고 말할 수 없다. 그런 곳이었다.
일상을 살아가다 간혹 시와라는 지명을 접한다. 그러나 나는 흙먼지가 창궐한 황색의 색감보다, 찝찝하고 추웠던 오두막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2025.01.25
시와의 풍경들.
시와의 건물은 노르스름하다. 건물은 벽돌과 진흙, 건초와 돌을 뭉쳐 쌓아 올렸는데, 시선을 정면에 두어도 하늘의 파란색이 시야를 쫓는다. 모든 건물은 높지 않고 낮아서다.
카이로에서 시와까지 우리를 실어나른 택시에 나는 정든 슬리퍼를 두고 내렸다. 깨달았을 때는 이른 오전이었다. 문을 연 상점은 없었다.
슬리퍼를 파는 상점을 기다리며 찾는 데는 약 1시간 30분이 걸렸다. 내내 흙먼지를 뒤집어 써야만 했다. 그리고는 로컬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에서는 진흙맛이 났다.
애증의 숙소. 풀과 짚을 엮어 만든 오두막이다. 그리고 시와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다.
시와에서의 하룻밤을 여기서 지냈다. 내가 숙소에서 자는 것인지, 노숙을 하는 것인지 그런 고민을 밤새 했다.
어두워진 사막의 찬 바람은 엮인 풀과 짚 사이로 들어온다. 언제 세탁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부드럽지 않고 빳빳한 부직포 같은 이불을 목까지 덮어 씌워 견뎌내다 보면 동은 틀 것이다.
침대에 들어오는 것이 바람뿐이라면 그나마 반가웠을 거다. 간혹 날벌레 같은 것들이 불빛을 쫓아 전구 주위를 아른거리고는 하였다.
그럼에도 저 숙소를 택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익숙함과 편안함을 벗어나 스스로를 내려놓는 것은 당시 낭만의 척도였다. 그렇게 포용력 좋은 낭만은, 숙소에서의 하룻밤 정도야 기꺼이 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요르단 와디럼 사막 한가운데 텐트, 이집트 카이로 공항에서의 노숙과 함께 시와의 숙소는 배낭여행 낭만 3대장을 그렇게 당당히 차지했다.
숙소에서 화장실과 샤워실을 이용하려면 몇 보를 걸어야 했다. 슬리퍼 안으로 모래가 넘치지 않도록 조심스레 걸어야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숙소 앞에서 어린이들이 풀을 태우고 있었다. 숙소에서 잡히지 않는 와이파이를 쫓아 실외에 앉아 있으니, 노르웨이인이 말을 걸었다. 그녀는 이스라엘 전쟁에 대해 내게 물었다. 내 대답을 들은 그녀의 표정을 보았다. 아마도 그녀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주지 못 했다고 생각한다. 어서 그 자리를 피했다.
그 애와는 12시 30 즈음에 시와의 중심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애는 소금호수에 가자고 하였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녀는 스카프로 애써 입과 코를 가린 채 도로 한 켠으로 내게 오고 있었다.
어떤 이집트 사내가 그 애를 옆에서 계속 쫓으며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사내는 나를 보더니 긴장한 표정을 지었고, 그 애는 나를 보더니 은은한 미소를 품었다. 사내에게 '무슨 문제 있냐'고 물으니 그는 이내 "아무 일도 아니"라며 돌아갔다.
그 애와 함께 걷는 9일 동안 많은 사내들이 그 애를 쫓고는 하였다. 나 역시 그들을 쫓아내곤 하였다.
그 애는 우리 둘이 소금호수에 가자고 하였다. 우리 둘은 근처 트랙터를 잡아 흥정해 소금호수로 향했다.
소금호수는 트랙터를 타고 이십 여분을 달려야 했다. 그동안 탔던 그 어느 교통수단보다 시와 트랙터 탑승감은 구렸다. 초등학교 우유 배급 상자에 몸을 꾸겨 앉아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딱 비슷할 것이다.
우리는 소금호수에 도착했다. 시와의 소금호수는 하나의 호수라기보다는, 그 지역 전체에 소금호수가 포진되어 있다. 트랙터를 탄 채 마음에 드는 호수를 찾고, 몸을 띄우며 사진을 찍고, 그러면 되는 곳이다.
그렇게 소금호수 지역은 광활했다. 투명함과 거리가 멀어 우윳빛을 띠는 호수들이 배경을 스쳤고, 하얗게 쌓인 소금 혹은 모래들이 쌓여 있었다. 다른 사람을 포함하여,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국적이었다. 외계 행성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나는 받았다. 우리 둘을 태운 트랙터는 한참동안 그곳을 지났다.
그렇게 몇 분을 달렸다. 그 애는 하트 모양의 소금호수를 찾고 있었다. 몇 번의 호수를 패스하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호수를 찾은 건지, 혹은 체념한 건지. 이내 한 호수 앞에 우리는 멈췄다.
그 애는 멜빵을 풀고 바지를 벗었다. 그리곤 신발과 양말을 벗어 평평한 돌 위에 가지런히 올려 두었다.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소금호수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나한테도 입수하라고 했다. 나는 소금호수에 올 줄 몰랐다. 수영복이나 여분의 옷을 챙길 여지는 없었다. 나는 안에 속옷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그 애는 상관 없다며 나를 재촉했다. 또 재촉이다.
운동을 안 한 지 꽤 돼서 복근이 희미해졌는데. 새삼 그런 신경을 쓰다가, 우리는 호수에 몸을 띄웠었다.
입수를 마치고 나와 옷을 다시 입었다. 주섬주섬. 수분기는 금세 증발했다. 소금만 남았다. 우리 둘의 몸과 옷은 하얀 소금으로 덮여 있었다.
내 주머니에는 담배가 있었는데, 연초는 딱 세 대 남아있었다. 그 애와 나, 그리고 트랙터 운전사까지. 우리 셋은 사막을 바라보며 연초를 태웠다.
우리는 클레오파트라 목욕탕에 들렀고, 츌링과 카이?(그 한국 욕한 애)와 넷이서 저녁을 먹었다. 카이는 금세 친절해져 있었다.
역시나 츌링은 화가 난 상태였다. 왜 자신에게 말하지 않고 둘만 소금호수를 갔냐며, 그 애에게 따졌던 모양이다. 둘의 기류는 미묘했다. 그 애와 츌링의 여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았다. 슬슬 이들과의 동행에서 빠질 타이밍이라고, 치킨 볶음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고성에 들렸다. 그리고 정상에 올랐다. 1월 25일 시와의 노을을 봤다.
해는 지고 시와는 어두워졌다. 나를 제외한 둘은 시와 사막 투어를 가기로 했다. 그들은 내게 권유했지만, 나는 역시나 거절했다. 요르단에서 이미 와디럼 사막을 봤기 때문이다. 그 애와 마지막 날인데, 사막 한 번 정도야 더 보는 것이 뭐 대수겠는가 싶었지만, 문제는 역시나 돈이었다. 돈. 그놈의 돈이 항상 문제였다. 여유는 있었지만, 그래도 아껴야지. 그리스까지 가려면.
사막에 간 그들을 뒤로 하고, 나는 그 추레한 숙소에 혼자 돌아왔다. 여기서 하루를 자고 나면, 익일은 동행의 마지막 날이다.
시와에서는 술을 구할 수 없다. 스프라이트를 사서 포카칩과 먹었다. 심란함을 달래려 알코올이 조금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애는 사막에 별을 보러 간다고 했다. 별이 많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나는 준비했던 말을 그 애에게 하고 싶었다. 月亮代表我的心. 의역하면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합니다". 후루가다 버스에서, 내 어깨에 기댄 그 애와 함께 들었던 노래 제목이다. 그야 나는 중국어를 못 하니까, 비겁하게 달에게 떠넘기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나는 그 밤의 달이 밝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 애는 별을 보러 간다고 했으니까. 달빛이 밝으면 별빛은 묻힌다. 그래서 나도 달이 어둡기를 도로 바랐다. 그날 밤하늘에 달은 보이지 않았다. 준비했던 말도 그래서 보내지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