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와 광저우. 이집트 동행 재회

by 별거없음


2025.01.19


중국 광저우에서 그들을 만났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시와까지. 총 아홉날을 지나 1월26일에 헤어지고 12월 29일에 만났으니 약 일 년만이다. 참 우연한 계기였다. 죽을 때까지 셋이 볼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여러 악재가 겹쳐 삶에 대한 회의가 극심하던 와중 출국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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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한 포즈



우리 셋은 광둥 포산시에서 만나 저녁을 함께 먹기로 되어 있었다. 츌링의 퇴근을 기다리며 그 애와 둘이 미리 만났다. 만나면 어떤 말을 먼저 건넬까, 미처 생각을 마치기 전에 불쑥 마주쳤다.



카페에서 만난 그 애는 나를 반겼다. 훠궈를 사주며, 고기와 완자를 내 그릇에 자꾸 덜어주었다. 배불렀다.



그리고 그 애는 이미 현실을 찾아갔더라. 슬슬 결혼적령기인가 보다. 멋쩍어하며 말했다. 본인은 27살(한국 기준)이라며 이젠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아직 연애는 아니지만, 알아가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조금 늦었다.



그놈의 국적이나 언어. 그러니까 '현실'이 뭐길래. 그걸 올해 내내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 남자와 유창한 중국어로 통화하는 그 애에, 몇 개의 짧은 영어 단어나 번역기로 겨우 소통하는 우리가 비추어보였다.



image.png?type=w773 이집트에서 대화하는 츌링과 나. 우리의 대화는 보통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

이후 츌링과 셋이서 저녁 식사를 하며, 우리는 몇 잔의 맥주나 위스키를 들이켰다.



만남이 끝난 뒤, 츌링이 택시를 불러줬다. 택시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从前说(종전설)이었다. 현실보다 감정에 투신했던 화자의 이별 회상 노래다.


호텔 앞에 도착해 혼자 고량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츌링한테 위챗이 왔다.


츌링은 다 눈치 채고 있었다. 이집트에서부터 그 애와 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고 했다. 본인도 눈치가 있다며, 그렇잖으면 왜 이집트에서 버스 자리를 바꿔줬었겠냐고 했다.


그 애와의 일화는 친한 친구들과 술자리에서나 푸는, 이내 휘발될 소위 술자리 썰 같은 것들. 그러고 나면 짐짓 옛 생각에 담배 한 대를 꼭 물어야 하는, 평생 그 정도에 그칠 줄 알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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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박물관에서 너희한테 말걸지 말걸, 그랬더니 츌링은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인생의 모든 과정이 반드시 결과를 가져올 필요는 없다며, 보내주는 것도 인연의 일부라고 했다.


츌링은 또, 감정보다 조건을 따지는 게 어른의 연애일 수 있다며 내가 순진하다고 했다.





우리 셋은 3일 뒤인 1월 1일에 또 보기로 했었다. 함께 광저우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샤오펀은 다음달에 서울에 올 수도 있다고 했었다. 나는 앞으로도 너와 편한 친구로 남을 수 없을 거라고, 안 보겠다고 했다.



눈 딱 감고 "친구로 지내자"하면 해결될 문제였겠지. 그러나 그것은, 마와리를 돌던 와중에도 문득 생각이 났던, 지난 일 년간 내 감정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평생 안 보고 말지.



한 번 봤으니 이제 됐다. 이집트에서 동행했던 그 9일로 360일을 채웠다. 351일의 공백을 메우려면 9일은 난을 반죽하는 밀가루처럼 두껍지 않고 넓어져야 했다. 어느새 머릿속에서 비대해졌다. 반죽이 얇아지는 만큼 실체는 막연해졌다.



그리고 실체를 확인하니, 비대한 건 비로소 알맹이처럼 쪼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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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단히 그 애를 떠올린 한 해였다.


츌링은 그래서 내가 우유부단하다고 했다.



이례적으로 눈이 내리던 지난 4월. 길어진 배낭여행 기간 사이 이사를 온 낯선 집 앞에서, 막문위 <애정>이나 등려군 <월량대표아적심>을 들으며 담배를 피던 때가 생각난다. 오직, 그 너무나도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던 때도 있었다. 몇 장의 비행기 표를 끊더라도, 함께할 수 있는 잠깐을 꿈꿨었다.



그러나 사람으로서의 그 애보다, 낭만의 상징이나 열병으로서 그 애를 나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것들을 광저우에 내려놓고 갈 수 있을까, 한국에 도착하면 마법처럼 감쪽같이 사라질까.


귀국행 비행기 창가에 앉아 생각했었다.


마법처럼 감쪽같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마치 산성처럼 기포를 내며 나를 녹이려 들던 것들이, 이제는 맑은 맹물처럼 느껴진다.



이스탄불을 시발점으로 삼았던 작년 배낭여행의 테마는 회광반조였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회광반조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겠다. 잉크도 금방 마를 거다. 여행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여행을 마쳤으니, 나도 이제 현실로 돌아가야지.


곧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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