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포기와 회피'.. '미완성된 파편 조각들'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부터 쓰다 보니 많이 다크 할 것 같다.
그냥 일상을 적어 나가기엔 내 인생부터 정리가 시급하다.
지금도 아이들 등교 보내고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있지만 모른 척하고 글쓰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요즘은 사실 늘 혼자다.
사람 만나는 것도 귀찮고 사실 꼭 만나야 될 사람도 없고 또 내가 제일 못하는 일상의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게 힘들어서 그들이 하는 내용의 80%는 못 알아들으면서 알아듣는 척 앉아 있는 것도 곤욕이다.
그래도 가끔은 고립된 생활과 외로움이 몰려오면 동생이나 친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다.
요즘 유튜브나 네이버 검색에서 가장 많이 찾아보는 건 "성인 ADHD주부"이다.
성인 ADHD 주부로 살아보니 주부로 산다는게 ADHD환자들에게는 얼마나 큰 어려움이 있다는것을 당사자가 아니면 잘 모를것이다.
예전엔 ADHD 주부들의 일상에 대해 쓴 글들이 많이 안 보였는데 요즘엔 브런치라는 어플을 통해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나도 치료하면 바뀔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 대해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43살이라는 나이에 같은 병명(?)을 가진 사람들의 글을 통해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하지만 오랜 안 좋은 습관들을 고친다는 건 40년 동안 나를 묶어온 게으름과 무기력 그리고 귀차니즘이라는 거대한 바위를 하루하루 물방울 떨어지는 작은 노력으로 싸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ADHD의 가장 문제점은 과잉충동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더 문제는 실행력과 장기적인 계획을 못한다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생각만 많다.
그래서 아예 시작조차 못하고 포기하고 설령 시작했다 하더라도 끝마치치 못한 것들로 내 인생은 물들여져 있다.
ADHD....
내가 이런 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 사실은 작년 초였던 것 같다.
나는 남편을 따라 해외에 주재원 가족으로 와있었다.
갑자기 인지 서서 힌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사람을 만나 얘기를 할 때 그 얘기들이 그야말로 바람에 흩어지는 먼지처럼 그냥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정신줄 붙들고 집중하려 하면 들리나 어쩔 때는 진짜 몸만 거기 있었지 거기에서 했던 모든 것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세명인데 아이들의 친구 이름을 몇 번을 얘기해 줘도 기억이 안 났으며 가끔 아이들 학교에서 누가 날 아는 척하며 누구 엄마라고 얘기할 때 분명 그 사람은 나를 아는데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 민망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그런 자리에 가는 것이 무서울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남편도 주재원 기간을 다 못 채운 채로 건강상의 이유로 우리는 다시 한국에 귀국해야 했고 쉴 새 없이 터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일상이라는 자리에 내팽겨졌다.
한국에 오기 전 아주 큰 무기력감으로 거의 소파와 한 몸이 되어 하루종일 붙어 떨어지질 않았었고 밖에 나가는 것은 대인기피증처럼 사람들을 만날까 봐 무서워서 꼭 나가야 되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안나가게 되었다.(후에 귀국해서 건강검진을 했고 갑상선에 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했고 그 이유도 한몫 했다는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유튜브에 이상하리 만치 알고리즘에 의해 많이 떴던 영상이 성인 ADHD에 대한 영상이었는데 아마도 내가 우울증이 아닌가 싶어 찾아본 영상들과 연관되어 보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너무나 딱 맞는 나의 상황들이 그리고 자라오면서 여기까지 나 자신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그 영상들로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고 빨리 한국에 가서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고 싶었다. 줄곧 나만 탓해온 세월이 야속하고 뭔가 원인을 알고 지금이라도 약 먹고 광명 찾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정신과 예약을 잡고 상담을 하고 CAT검사라는 것을 했다.
결과는 아니나 다를까 성인 ADHD가 맞았고 특별히 멀티가 잘 안 되는 형이라고 하셨다.
멀티....
내가 제일 잘 못하는 것이 멀티이다.
한 가지를 하면서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애초에 나한테는 없었던 거 같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그걸 알았는지 나를 한 길로만 가길 원했던 엄마는 나를 피아노라는 한 길만 파게 만들었다. 그래도 시키는 건 군말 없이 잘하던 착한 아이 었으니까..
사실 어릴 적 내 얘기를 부모님이나 친적들로부터 들었을 때는 천방지축도 그런 천방지축이 없을 정도로 정신없는 아이 었던 거 같다.
내가 남의 집에 가면 오만 잡동사니들을 다 어지르고 부시고 그래서 내가 간다 하면 집주인은 모든 손에 잡히는 것들은 치워 놓아야 했다고 엄마는 자주 말하시곤 했다.
그리고 툭하면 어디 부딪히고 다치고 하는 것은 일쑤이고 그래서 늘 무릎 보호대를 하고 다녔다고도 한다.
그리고 나를 잠깐 키워줬던 이모는 나를 볼 때마다 그 당시 이모를 그렇게 깨물어서 나 때문에 상처가 많이 나고 그랬었다고 그런 내가 이렇게 컸다고 이렇게 얌전해졌다고 만날 때마다 얘기하시곤 한다.
사실 내가 그렇게 천방지축 난리 부르스였다는 사실은 먼 과거의 역사 속에서 그랬었구나..... 하는 타인의 말을 통해 그려지게 되는 그냥 전설 같은 이야기인 것 같이 나에게는 기억이 없다.
나에게 있는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빠의 외도로 인해 부모님의 관계는 틀어졌었고 이혼을 하시진 않았지만 별거 생활을 오래 하셔서 할머니 집으로 맡겨졌었던 그즈음으로 해서 줄곧 우울 모드였었던거 같다.
매사에 자신감도 없고 친구도 별로 없고 존재감 없는 아이로 자라 갔던 거 같다.
그러다 엄마가 나를 교회에 보냈었고 교회에서 친구들 만나고 선생님들이랑 있었던 것을 좋아했던 거 같다.
그리고 할머니집에서 엄마집(?)으로 다시 가게 되었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아빠랑 다시 합가를 하였다. 자유영혼이었던 아빠는 늘 다른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 이름만 가장.. 엄마에게는 세상 미운 존재였던 거 같다.
항상 엄마 입에서는 아빠에 대해 좋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 없었고 "너희 아빠는..."이 얘기가 나는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었던 거 같다.
마치 내가 아빠를 택한 거처럼... 사실 엄마가 아빠를 택해서 내가 나왔지..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아빠의 안 좋은 소리만 들으면 점점 더 아빠를 적대시해왔던 거 같다.
그냥 없는 사람 취급하며 철저히 무시하면서 말이다..
그게 뭔가 아빠에게 복수하는 길 같았다.
우리 가정을 깬 장본인에게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나랑 아빠랑 닮은 점도 많고 말도 잘 통했을 텐데...
아빠가 돌아가실 때 까지도 아빠를 용서하지 못한 못난 딸로서 많이 대화하지 못하고 무시하고 어쩌면 경멸했었던 나 자신이 많이 후회스럽다. 아빠가 간암으로 투병하다 돌아가셨는데 투병생활 중에 나에게 "너는 참 나랑 많이 닮았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아직 귀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리고 아빠가 예전에 나한테 "너는 음악이랑 결혼해라.."라고 말했었는데 지금 결혼해서 자식이 3명이나 있는 입장에서 왜 아빠가 나에게 결혼하지 말아라고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돌아와서....
성인 ADHD 주부로 살아가면서...
과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되는 대로 살아지고 있는 것인지 물어본다면..
후자 쪽이라 할 수 있겠다.
약을 복용하고 며칠은 광명 찾은 느낌으로 세상이 이렇게 깨끗해 보이고 마치 안경을 쓴 것처럼 모든 것이 또렸해 보였다.
ADHD의 특성이 주의 집중력이 약하다는 것이 있지만 지속력도 약한 것처럼...
병원도 가고 인지 행동 치료를 위해 상담도 받았지만..
귀찮다고... 까먹어서..
다른 해야 할 일들이 많기에... 또 미완성된 파편처럼 다시 제자리에서 무기력하게 일상을 보내고 시간만 죽이다가 ADHD주부들의 일상의 이야기들을 보고 다시 힘을 얻어 나도 누군가 나랑 비슷한 주부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될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에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다.
첫 글이라 두서없고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지만... 이 조차도 한 방울 두 방울 물줄기가 큰 바위를 깨뜨리듯 마음먹고 글쓰기에 집중할 때 나의 달라진 모습들을 기대하며 오늘의 첫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