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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두하 Dec 28. 2021

Big Sean I Don't F**k With You

2021년 12월 28일

오늘 하루는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노력'이라는 말이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내겐 큰 노력이었다. 그리고 최대한 오늘 하루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과거나 미래에 현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아내를 직장에 데려다준 다음에 집에 와서 다시 잠에 들었고, 느지막이 일어났다. 점심을 먹고, 아주 살짝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렸다. 청소나 빨래도 생산적인 일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러고 나서 소파에 앉았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하고 노래를 들을까 싶다가, 뭔가 재밌는 걸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팟캐스트 앱을 열었다.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래퍼 노리에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Drink Champs'가 생각났다. 얼마 전 칸예 웨스트가 나와 여러 가지 폭탄 발언을 쏟아놓고 간 바로 그 팟캐스트다.


에피소드 목록을 보다가 빅 션이 출연한 편을 선택했다. 칸예 웨스트가 팟캐스트에 나와 '빅 션과 계약한 것은 내 인생에 가장 후회하는 일이다'라고 말한 후, 빅 션도 같은 곳에 출연해 대응한 것이다. 러닝타임은 무려 3시간이나 되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팟캐스 트니까. 나는 책을 보고, 티비를 보고, 게임을 하고, 집 정리를 하면서 3시간의 팟캐스트를 쭉 다 들었다. 영어라서 놓치는 부분도 많았지만, 흥미로운 부분도 많았다. 빅 션의 커리어를 쭉 돌아보며 코멘트하는 것도 재밌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는 밸런스 게임을 하면서 대답을 못하면 술을 마시게 하는 '술 게임' 형식의 코너도 재밌었다.

Drink Champs에 출연한 빅 션

가장 흥미로운 건 후반부였다. 음주가 곁들여진 팟캐스트의 콘셉트답게 후반부로 갈수록 취기가 오른 빅 션은 그간에 일에 대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칸예가 빅 션에 대한 이야기를 한 팟캐스트가 방영된 후, 그는 빅 션과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이에 빅 션은 '매우 화가 났다'라고 밝혔다. 자신은 칸예가 주장한 것처럼 그가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행보를 응원했다고 한다. 더불어 자신의 삶을 바꿔준 것에 대해서 평생 고마워할 것이고, 여전히 그를 존중하지만, '그 발언'은 정말 실망스러웠다고. 모두가 GOOD Music을 떠나갈 때, 자신은 레이블을 통해 가장 많은 음반을 냈는데, 칸예는 자신보다 드레이크와의 관계를 신경 쓰기 바빠 보여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


빅 션과 칸예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해를 할 것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원수처럼 굴었던 칸예와 드레이크가 합동 콘서트를 여는 것을 보면서 역시 미국 셀럽들은 알 수가 없구나 싶었다. 하물며 빅 션과는 디스를 주고받은 것도 아니라서, 금방 갈등이 봉합될 것이다. 길어도 두 달만 지나면, 화해했다며 공연장 같은 곳에서 사진 찍고, 같이 작업한 곡이 나오겠지. 그렇지만 이런 예상과는 별개로, 항상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는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재미있기도 하다. 이러한 갈등 자체도 엔터테인먼트라서, 수용자들에게 끊임없이 가십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매번 훈훈한 분위기로 하하호호하기만 하는 국내 연예 산업계와는 또 다른, 솔직하면서도 - 물론 '솔직함'을 가장한 가식들이겠지만 - 인간적인 모습이 아닌가 싶다.


팟캐스트를 다 듣고 나니, 오랜만에 빅 션의 노래를 듣고 싶어졌다. 빅 션의 대표곡들은 쭉 들으니, 내 편견보다 좋은 노래가 많았다. 그의 노래 중 상업적으로 가장 히트한 싱글 중 하나가 바로 "I Don't F**k With You"다. 디제이 머스터드가 만든 간결한 래칫 비트 위로 '너와 상종하지 않겠어'라고 외치는 신나는 클럽튠이다. 노래 자체의 완성도가 엄청나게 뛰어난 것도 아니고, 딱히 내 취향도 아니지만, 노래가 나오면 일단 몸이 들썩인다. 자연스레 후렴구도 따라 부르게 된다. 인기가 많은 노래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빅 션의 "I Don't F**k With You"

나는 갈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칸예 같은 사람이 정말 싫다. 좋게 좋게 넘어가는 일을 항상 가시 돋친 말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발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게 싫다. 물론 내 삶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대중에겐 그저 즐거운 엔터테인먼트지만, 내가 빅 션이었다면 진저리가 났을 것 같다. 빅션은 칸예와 인연을 완전히 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말한 대로 곧 화해하고 말겠지. 그렇지만 나였다면 칸예 같은 사람은 진즉에 거리를 뒀을 것이다. 내 삶에 부정적인 영향만 미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래서 많은 사람과 두루 어울려 지내는 게 나이가 들수록 힘든 것 같다. 그저 내 가족, 그리고 친한 몇 명만 가끔씩 보는 게 제일 낫다. 어울리는 게 힘든 사람이면 애초에 상종하지 않는 것이 낫다. 이제는 내 주변 아주 작은 바운더리만 지키는 게 삶의 목적이 됐다. 갈등 없이.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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