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7일 월요일
오늘 하루는 혼자 보냈다. 휴가 중. 아내는 출근하고, 나는 집에 남는다. 조금 늦게 일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빈둥거리며 보내기만 한 건 아니다. 11시쯤 운동을 갔고, 바로 같은 건물에 있는 한식 뷔페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집에 와서 씻고, 옷을 입고, 집 근처 쇼핑몰에 갔다. 돌아다니다가 카페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집에 돌아왔고, 퇴근 시간에 맞춰 아내 회사로 갔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하루. 나는 이런 하루가 좋다. 이런 하루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나는 불안해진다. 이러한 시간이 얼마나 갈까. 생활에 변화가 생기겠지. 변화는 당연한 거다. 그렇지만 나는 두렵다. 그러한 변화가. 이미 예정된 변화기도 하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변화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 아니, 시간이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시간이 가는 게 무섭다. 지나간 과거가 그립다. 몇 시간 전에 일어난 일도 더 이상은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된다는 게 너무 무섭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항상 과거에 발이 묶여있다.
켄드릭 라마의 "Poetic Justice"는 2012년에 나온 노래다. 2012년 말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이제 9년 차가 되었다.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과거다. 최근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2011년 9월에 전역했다. 그리고 삶이 행복해질 줄 알았다. 내가 열심히 살면 뭐든 다 될 수 있을 줄 알았던 시기다. 당시엔 음악도 더 재밌었다. 켄드릭 라마, 드레이크, 에이셉 락키, 조이 배드애스, 대니 브라운, 드레이크,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등등, 지금은 씬을 이끄는 베테랑이 된 아티스트들이 다 2010년대 초반에 등장했었다. 다 내가 사랑하는 아티스트들이다.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눌 때가 가장 즐거웠었다. 우리 무리는 친한 선배가 학교 앞에 만든 바 '살롱 메리제인'에서 항상 모였다. 메리제인은 우리만의 아지트였다. 메리제인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그곳에서 정말 많은 추억을 쌓았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들으면 항상 그때를 추억하게 된다. 켄드릭 라마의 [Good Kid, M.A.A.D City]는 현대 힙합 최고의 명반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20대 중반을 떠오르게 하는 음악이 되었다. 당시에도 내 나름의 고민과 갈등이 있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저 다 즐거웠던 것만 같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대학생 시절은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가끔은 너무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이라는 것이 너무 슬프다. 음악들은 여전하지만, 그 시간은 나의 머릿속에만 흐릿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혼자 있을 때면 자주 그 시간들을 머릿속으로 반복 재생한다. 그렇게 나는 나아가지 못한다.
이제는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아내와 이렇게 지내는 시간도 좋지만, 이렇게 있어서는 발전하지 못한다. 휴가는 일주일 남았다. 다음 주부터는 다시 안갯속을 헤쳐나가야만 한다. 잘할 수 있을까. 수많은 걱정과 불안이 나를 감싼다. 나는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언제쯤이면 마음이 안정될 수 있을까. 불안감과 걱정 탓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너무 어렵다. 시간을 멈추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