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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바퀴벌레를 잡은 사람은 누구인가?

by 그린토마토

아침에 출근을 했을 때, 이미 교실에는 세 명의 아이가 등교를 한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도 전자칠판 앞 바닥에 배를 드러내고 누워 다리를 힘없이 까딱거리는 바퀴벌레는 못 보았던 것이다. 나는 우리 교실에서 최초로 바퀴벌레를 발견한 사람이었고 그 광경앞에서 저절로 큰소리가 튀어나왔다. 심지어 말을 더듬기까지 하며.


아악. 여기 바퀴벌레가 있어! 호, 홈키퍼 어딨지?


안타깝게도 내가 그토록 찾던 바퀴벌레 약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없나 생각하던 차에 스프레이형 방향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거라도 뿌려야 되겠다 싶어 바퀴벌레에게 마구 뿌렸다. 곧이어 늘 믿음을 주는 잘생긴 반장 루카스가 90도 인사를 하며 교실에 왔다. 나는 반장이 도움을 줄거라 믿고 바퀴벌레 있어! 하고 소리쳤다. 반장은 순간 표정이 굳더니 바퀴벌레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멀찍이 섰다.

반장은 육 년 만에 바퀴벌레 처음 봐요! 으아악, 하고 소리쳤다.


일단 나는 방향제를 넉넉히 뿌린 뒤 바퀴벌레 위에 휴지를 덮었다. 차마 바퀴벌레를 한번 꾹! 누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래도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겠다 싶어 쓰레받기에 바퀴벌레를 살살 쓸어 담을 참이었다.

그때, 자리에 앉아있던 그레이스가 나섰다. 그레이스는 아침이면 과제를 하고 책을 읽는 조용한 여자아이였다. 그레이스는 제가 해볼게요, 하고 말한 뒤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서 빗자루를 받았다. 쓰레받기에 휴지로 덮힌 바퀴벌레를 침착하게 쓸어 담았다. 그러곤 빗자루 끝으로 바퀴벌레를 몇 번씩 내리쳤다. 우리는 그레이스가 바퀴벌레를 내리칠 때마다 으아악, 소리를 지르며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레이스는바퀴벌레를 깔끔하게 처리한 뒤 내게 빗자루를 주며 경쾌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건넸다.

엄마가 웬만한 벌레는 저보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거든요.


그레이스의 그 말속에서 전문가의 포스가 풍겼다. 우리는 모두 그레이스에게 박수를 쳤다. 이른 아침의 바퀴벌레 소동이 끝난 뒤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모두 교실에 향기로운 냄새가 나요, 하고 말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방향제를 뿌린 사연을 이야기하였고 그 이야기의 끝에 용감한 그레이스가 있었다는 걸 강조했다. 그레이스가 바퀴벌레를 잡은 일은 두고두고 우리 반의 무용담이 되었다.


나는 거미, 지네, 모기, 벌 등에는 잘 대응을 하는데 여전히 바퀴벌레는 어렵다. 어릴 때 바퀴벌레가 많은 집에 살았던 기억이 너무 공포스럽고 그 공포를 아직도 극복 못한 것 같다. 그때, 그레이스처럼 바퀴벌레를 용감하게 잡는 연습을 좀 해볼걸.


고등학교 때 살던 집에는 바퀴벌레가 특히 많았다. 밤에 부엌문을 열면 네, 다섯 마리의 바퀴벌레가 사사삭 어딘가로 숨었다. 나는 나중에 요령이 생겨 불을 켠 뒤 한참 지난뒤에야 부엌에 들어가기도 했다. 바퀴벌레가 숨을 시간을 준 것이다. 나에게 바퀴벌레는 대면해야할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서로 피해야할 존재로 각인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퀴벌레와 나는 적당히 피하며 거리를 두는 사이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그건 바퀴벌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바퀴벌레와의 대면을 극도로 무서워했던 기억이 잘못 자리 잡아 여전히 바퀴벌레가 두렵다.


하지만 더 이상 바퀴벌레로부터 도망 다니지 말자.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다. 이제 내가 잡겠다! 우리 반 그레이스에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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