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특수아이 소피아가 내게 처음 말을 걸었다. 소피아는 석 달 동안 내가 묻는 말에 웃음을 띠거나 예, 아니오만 했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아이들이 모두 특별실에 가고 없을 때, 드디어 소피아와 대화를 나눴다. 나는 교실에 들어서는 소피아에게 아이들이 모두 음악수업을 하러 음악실에 갔다고 안내했다.
그러자 소피아가 내게 말했다. 음악실 어딘지 모르는데요. 나는 소피아의 말에 마음이 뭉클했다. 석 달만에 처음 들어보는 소피아의 꽤 긴 대답이었다. 학교 음악실이 별관과 본관 두 군데 있기에 헷갈릴 수 있겠다 싶었다. 선생님과 같이 가자. 데려다줄게, 하고 말했다. 그러자 소피아는 네, 하고 나를 따라나섰다. 소피아를 데리고 본관 음악실로 가는 내내 기분이 좋아졌다. 소피아의 작고 귀여운 문장이 내 마음을 가볍게 했다.
사회수업 시간에 경제 관련 수업을 하며 내가 최근 물건을 구입하며 고민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화장실에 있는 비데를 사기 위해 -하필 비데를 예로 들었을까? - 가격, 디자인, 품질 등을 고민했던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우리 반 마이클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마이클에게 질문이 무엇인지 물었다. 마이클은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비데가 뭐예요?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고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마이클은 할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고 집에는 비데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마이클이 학교나 공공시설에서 비데를 봤을 수도 있겠지만 사용하지 않아 몰랐을 거다.
나는 일단 다른 아이들이 마이클을 놀릴까 봐 신경을 썼지만 - 만약 아이들이 놀린다면 나는 모를 수도 있지. 그걸 꼭 다 알 필요는 없어요, 등의 말을 하려고 빠르게 몇 가지 말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 아이들이 체육대회와 스승의 날을 거치며 좀 더 서로를 이해하는 품이 넓어진 걸 느꼈다.- 나는 그런 와중에도 속으로 다행이다, 하는 생각을 하며 비데가 무엇인지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곤 마이클과 둘이 있을 때, 우리 학교 서편 맨 끝 1층 화장실에 학생용 비데가 있으니 꼭 한번 보고 집에 가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자 마이클은 또 해맑게 네, 하고 대답했다. 나는 수업 마치고 나서도 마이클이 비데를 보고 갔을까 궁금했다. 내가 따라가서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야 그럴 필요 없이 영상이나 사진으로 알려줄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마이클은 지난주에도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급식시간 직전에 손을 씻으러 화장실을 가다가 마이클의 발가락이 화장실 벽에 부딪혔다. 마이클은 어렵게 급식실까지 내려온 뒤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겠다고 했다. 보건선생님은 마이클의 발을 붕대로 감았고 마이클은 목발과 휠체어를 사용했다. 마이클은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나는 마이클의 점심밥을 챙겨먹인 뒤 본관 1층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곤 교실로 올라가 마이클의 책가방을 챙겨 1층으로 다시 내려갔다. 그때, 마이클의 할아버지가 마이클을 데리러 학교로 오셨고 나와 마주쳤다.
마이클은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웃으며 '할아버지' 하고 반갑게 불렀다. 발가락이 아파 힘들어했던 마이클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나는 마이클의 그 환한 얼굴을 본 순간, 마음속으로 할아버지가 오래오래 사시길 기도했다. 마이클의 얼굴이 언제까지나 환하게 빛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아이들의 말과 표정이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나는 아이들의 말에 속으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환해진 마음을 움켜잡고 한참 멈춰있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