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아침이었다. 학교에 출근을 하자마자 반 아이들에게 쫓겨났다.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오지 말라며 문 앞을 막았다. 나는 속으로 스승의 날이니 어쩌겠냐, 하고 못 이기는 척 연구실에 있었다.
저학년을 오래 하였기에 6학년이 준비하는 스승의 날 행사가 낯설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미리 초콜릿도 사고 새로운 젤리도 샀다. 아이들이 뭐든 준비하면 나도 뭘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혹시 준비를 안 한다 해도 스승의 날 기분 좋게 간식을 나눠먹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침 일찍부터 나보고 교실 밖에 있으라고 했던 아이들이 1교시 시작 전까지 너무 조용했다. 이제는 들어가야 되겠다 싶어 교실로 가니 우리 반 메이비가 교실문을 선뜻 열어주며 나보고 한 마디 툭 던졌다.
"선생님, 저희들 아무것도 준비 안 했는데요. 그냥 들어오세요!"
나는 속으로 당황스러웠지만 이것도 장난이겠거니 생각했다. 속는 셈 치고 나도 한 마디 건넸다.
"아. 그래.... 선생님도 너희들이 뭔가 할까 봐 부담스럽고 걱정되었는데 잘되었어."
교실로 들어가니 정말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준비 안 할 거면 아예 처음부터 교실 들어오지 말라는 말이라도 하지 말지. 괜히 민망했다.
1교시 시작 전에 아이들과 스승의 날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너희들과 두 달 반 밖에 만나지 못했는데 무슨 스승의 날이겠냐. 혹시나 너희가 두 달 반 지내는 동안 서운한 게 있었다면 오늘 선생님 나눠주는 초콜릿 먹고 풀어.
그러곤 옛 제자들 이야기, 내 선생님의 이야기 등을 하다가 초콜릿을 같이 먹고 수업을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오전 내내 아침에 했던 아이들의 행동과 며칠 전 아이들끼리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편지 어쩌고저쩌고, 선생님은 무슨 색 좋아하나요? 하고 묻던 아이들 질문, 교실에 들어오지 말라던 행동은 다 뭐였지?
점심시간에는 또 우리 반 리사가 좋아하는 색을 물었다. 나는 파랑과 보라를 좋아한다고 했고 리사가 집요하게 묻는 분홍에 대해서는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교실에 들어가려고 하니 아이들이 말렸다. 지금 준비 중이라고. 나는 오전에 한번 속았던지라 그래도 교실에 들어가려고 했다. 아이들이 절대 안 된다고 또 막았다. 할 수 없이 연구실에서 아이들이 부를 때까지 기다렸다.
5교시에 아이들이 나를 부르자 교실로 갔다. 반 아이들이 모두 쪽지를 썼고 그 쪽지들이 칠판 가득 붙어 있었다. 칠판에는 하트와 나에 대한 메시지들이 적혀 있었다. 그러곤 아이들이 분홍 카네이션 바구니를 건네었다. 아차. 분홍색 좋아한다고 할걸.
나는 아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면서도 6학년들이 챙겨주는 스승의 날 행사가 익숙지 않아 어색해했다. 그러자 남자아이들이 내 옆에서 춤을 추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와 투샷까지 찍으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아이들은 다 같이 노래를 부른 뒤 기념촬영도 하자고 했다.
아이들이 나를 가운데 서라고 해서 얼떨결에 아이들 사이에 섰다. 그러자 부반장이 모두 꽃받침이야, 하고 소리를 쳤고 아이들의 팔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에구. 민망해라. 아마 일 년 중 가장 민망하고 부끄러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제 미리 사둔 새로운 젤리를 꺼내어 보답했다. 얘들아, 집에 가서 양치질 잘해야 한다!
나는 오늘 6학년의 능청스러움에 와장창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