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사는 시어머니의 어깨는 한 두 달 전부터 좋지 않았다. 병원을 옮기며 치료를 해도 차도가 없었다. 나는 지나가는 말로 친정엄마가 가는 서울 쪽 병원이 있는데 거긴 한번 가면 낫는대요, 하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처음에는 경주-서울 KTX 비용을 물어보곤 깜짝 놀라 차비가 비싸서 못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도 어깨가 낫지 않자 시어머니는 서울 병원 이야기를 슬며시 꺼냈다. 나도 속으로는 차비를 계산했지만 겉으로는 그 정도야 뭐, 걱정 마세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하고 큰소리를 쳤다.
그렇게 해서 시어머니와 나는 결혼해서 처음으로 단둘이 기차를 타는 치료여행을 하게 되었다. 일단 시어머니와 기차를 타며 한 일은 시어머니의 트로트 음악 전화벨 소리 무음으로 바꾸기, 코를 크게 골 때마다 깨우기였다.
시어머니는 태어나서 두 번째 KTX를 탔다. 시어머니왈, 동네 사람들에게 농담 삼아 서울 가는 기차 한번 타자했는데 나랑 가게 되었다고 신기하다고 했다. 서울역에는 사람이 많았고 시어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시어머니의 팔짱을 꼈다. 시어머니는 두툼한 오리털외투를 입었지만 너무 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서울역을 벗어나 지하도를 따라 걸었다. 남대문 시장 쪽으로 가는 길에 숭례문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쉬는 날이었다. 나는 숭례문 앞에 선 시어머니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시어머니는 포즈를 나름 잘 취해주었다.
-어머님, 여기가 숭례문이에요. 처음 보신 거죠?
-아니다. 계중여행 때 관광버스 타고 지나쳐갔지.
시어머니는 안 가본 곳이 없다. 숭례문을 지나 도로를 건너자 남대문 시장이 나왔다. 뒷골목을 조금만 들어가자, 병원이 나왔다. 계단은 가팔랐지만 시어머니는 봉을 잡고 조심조심 올라갔다. 그리고 의사의 설명도 듣고 어깨에 주사도 바로 5차례 정도 맞았다. 치료도 생각보다 빨리 끝나 병원 앞 골목으로 들어가 설렁탕을 먹었다. 설렁탕을 먹고 나오자 골목에 기다리는 줄이 길었다. 시어머니의 눈이 한번 더 휘둥그레졌다.
내가 남대문에서 뭘 사가자고 해도 시어머니는 비싸다고 했다. 억지로 티셔츠 하나를 샀다. 까만 봉지에 시어머니 옷을 담았다. 약도 사고 옷도 사고. 우리는 다시 숭례문을 지나 서울역으로 걸어왔다.
살면서 시어머니와 언제 둘이서 설렁탕을 먹어보겠는가?
또 단둘이 언제 기차를 타보겠는가?
숭례문 앞에 선 시어머니의 모습은 언제 사진 속에 담아보겠는가?
기차에서 코 고는 고단한 시어머니 모습을 옆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자주 있겠는가?
경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다시 시어머니는 코를 곯았다. 평생 저 작은 몸으로 농사일만 하다가 노쇠해져 이제 온몸이 이리저리 아프기만 한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코를 골아도 깨우지 않았다. 나이가 드는 건 무엇인지 서글퍼지기도 했다.
경주역에 내리자마자 역사에 있는 롯데리아에 갔다. 시어머니는 몇 년 전에 햄버거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한번 먹고 싶어도 어디 파는지 몰라서 못 사 먹은 고기 든 빵. 시어머니의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몇 번 사드리긴 했는데 오늘 마침 어머니는 햄버거 가게를 찾았다. 시아버지 먹을 햄버거를 사가자고 했다. 경주빵도, 곶감도 말고 불고기 햄버거를 사자며 카드를 내밀었다.
경주역에 내려 시어머니 휴대폰을 무음에서 다시 트로트 음악으로 바꾸었다. 때마침 시아버지가 전화를 걸었다. 시어머니 휴대폰에서 '내 나이가 어때서' 라는 오래된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왔다. 시어머니가 반갑게 전화를 받아 서울 간 이야기를 시아버지에게 전했다. 긴장했던 시어머니는 시아버지 목소리를 듣고 긴장이 좀 풀렸는지 이빨을 환하게 드러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