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 트로트음악소리가 들렸다.엄마는 운동 갈 때 내가 사준 트로트음악녹음기를 틀면서 다닌다. 그래야 잡생각이 안 난다나.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힐 때가 있다고. 엄마는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싶어서 음악을 튼다고 내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엄마가 어디 가는지 알면서 묻는다. 엄마는 내가 질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엄마, 어디가?
-육교 지나간다.
나는 그다음 행선지를 또 묻는다. 어디 가는지 다 알면서 말이다.
-육교 지나서 어디가?
-운동 간다. 뒤쪽 공원에 맨발 걷기 하러.오늘은 날씨가 맑아.
나는 음악소리가 큰 것 같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음악소리 크면 젊은 사람 싫어할거야. 소리 낮춰요.
나는 그 와중에도 체면을 생각한다.
나는 엄마가 걸어 다닐 단풍이 짙은 나무 아래의 풍경과 엄마가 밟는 흙의 내음, 작은 돌멩이의 촉감을 상상한다.엄마가 걷다가 쉴 벤치도 상상한다. 차갑지 않은 바람은 살랑살랑 불고엄마는 그 바람을 쐬며또 여든여섯 번째 맞이하는 가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