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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토마토 Nov 15. 2024

엄마, 어디가?

여든여섯 할머니 마주이야기 2

  오후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 트로트음악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운동 갈 때 내가 사준 트로트음악녹음기를 틀면서 다닌다. 그래야 잡생각이 안 난다나.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힐 때가 있다고. 엄마는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싶어서 음악을 튼다고 내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엄마가 어디 가는지 알면서 묻는다. 엄마는 내가 질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엄마, 어디가?

-육교 지나간다.

  나는 그다음 행선지를 또 묻는다. 어디 가는지 다 알면서 말이다.

-육교 지나서 어디가?

-운동 간다. 뒤쪽 공원에 맨발 걷기 하러. 오늘은 날씨가 맑아.

  나는 음악소리가 큰 것 같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음악소리 크면 젊은 사람 싫어할거야. 소리 낮춰요.

  나는 그 와중에도 체면을 생각한다.


  나는 엄마가 걸어 다닐 단풍이 짙은 나무 아래의 풍경과 엄마가 밟는 흙의 내음, 작은 돌멩이의 촉감을 상상한다. 엄마가 걷다가 쉴 벤치도 상상한다. 차갑지 않은 바람은 살랑살랑 불고 엄마는 그 바람을 쐬며 또 여든여섯 번째 맞이하는 가을을 느낀다.


-엄마, 내가 사준 스카프 했어?

-스카프도 하고 네가 사준 모자도 썼어. 비 올까 봐 우산도 챙겼지.


우산은 엄마 지팡이 대신이다.

또각또각 우산 끝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경쾌하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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