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초등학교 육 학년 때였다. 나는 그날 당번이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당번을 했던 어렴풋한 기억만 희뿌옇게 남아있다. 점심도시락을 먹고 난 뒤 친구들과 교실 구석에 모여 앉아 놀았다. 선생님이 급히 교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오늘 당번 누구냐고 물었다. 멀리서 내 이름이 들렸다. 선생님은 쏜살같이 교실 구석에 있는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나의 한쪽 뺨을 한 손으로 잡아당긴 뒤 다른 쪽 뺨을 세차게 때렸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아마도 당번이 해야 할 일 하나를 빠뜨렸겠지. 그때의 기억 앞뒤로 선생님들에게 뺨을 맞았던 적은 없었다. 그날이 유일했다. 다른 누구보다 조용하고 소심했던 나는 자라면서 그날 왜 뺨을 맞았어야 했는지 되물었다. 나의 잘못이 뺨을 맞을 일이었던가 묻기도 했다. 선생님은 키가 컸고 머리카락이 검고 윤이 났었다. 눈썹은 짙었고 눈도 약간 큰 편이었다. 그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선생님의 외모마저 내게 무섭게 느껴졌다. 선생님은 정이 많고 위트 있는 성격이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뺨을 맞은 일에 가려져버렸다.
교사가 되었지만 같은 지역에 교장으로 근무하는 선생님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내 나이 마흔세 살에 다시 선생님을 마주쳤다. 딱 삼십 년 만이었다.
퇴직한 교장선생님들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예절수업을 하러 오는 날이었다. 나는 교장선생님들을 돕는 업무담당자였다. 아침 일찍 교장선생님들이 오는 시간에 맞추어 중앙현관으로 나갔다. 중앙현관을 들어서는 퇴직교장선생님들 중에 초등학교 육 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있었다. 나는 이미 공문으로 이름을 확인했기에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심장도 두근거렸다.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나는 여전히 선생님의 검은 머리카락과 큰 키가 떠올라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앞에는 초라하고 작아진 노인 한 명이 서 있었다. 검고 윤이 났던 머리카락은 거의 빠지고 없었다. 살도 이전보다 빠졌고 걸음걸이도 느렸다. 삼십 년 동안 가끔 떠올릴 때마다 무서웠던 내 기억 속 선생님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선생님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용서'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선생님은 더 이상 무서운 존재가 아니구나. 이제 힘없고 작아진 노인일 뿐이구나. 그렇다면 더 이상 미워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선생님이 너무 작게 느껴져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지난 삼십 년 동안 누구를 미워했던 건지. 그저 허상일 뿐이구나, 하는 생각에 아주 낮게 한숨을 쉬었다.
교장실에 퇴직 교장선생님들이 둘러앉았다. 나는 선생님에게 다가가 선생님의 제자라고 말했다. 삼십 년 만에 인사드린다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선생님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앉아있는 여러 선생님들에게 자신의 제자라고 나를 자랑했다.
지금은 그날 밝게 웃던 나이 든 선생님의 모습만 기억 속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어쩌면 내가 나를 과거의 감정에 가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돌아보고 다독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