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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토마토 Jan 07. 2025

사춘기 아이 안아주기

  같이 독서모임을 했던 민(가명)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만났다. 십년 만이었다. 너무 반가워 다가가 인사를 했더니 민은 바뀐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을 잡았다. 미소가 밝고 환했던 분, 나보다 연장자라는 것 정도만 알기에 사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만난다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민은 만나기 전부터 예쁜 카페나 식당의 링크를 보내다가 끝에 도서관에 가보는 건 어떤지 물었다.

  -새로 생긴 00도서관 가봤나요? 안 가봤다면 같이 가봐요.

  나는 좋다고 했고 민은 나를 데리고 새로 생긴 도서관에 가주었다. 우리는 일도서관 로비에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는 아주 특별했다. 민은 텀블러를 준비해왔고 자신이 준비해온 빈 텀블러에 내 커피를 따라주었다. 민은 뒷맛이 은목서향이 나는 커피라고 말했고 나는 지난 가을에 보았던 크고 환했던 은목서를 떠올렸다. 코끝에 은목서의 향이 스치는 듯 했다. 커피 때문인지 은목서 때문인지 마음 한 켠이 따뜻하게 데워졌다. 누가 챙겨주는 커피를 정말 오랜만에 마셨다.


  나를 환대해주는 그 분은 우리 에 대해 물었고 나는 그 날 아침 나와 싸웠던 딸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이 돌XX 같지 않나요?


  내가 말해놓고도 헉, 하고 놀랐다. 딸에게 상처받은 내 마음이 그대로 다 드러난 느낌에 부끄럽기도 했다. 민은 청소년상담을 하기에 사춘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쵸, 맞아요! 나는 민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다 이해한다는 듯 웃기까지 하며. 속으로 찔렸다. 나는 우리 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해하는 척 낑낑댄다고 말하고 싶었다. 사실 남의 아이들은 이해되는데 우리 딸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도 하고 싶었다.


  민은 나에게 두 딸을 키운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멀리 있는 다 큰 딸들과의 다정한 인사말, 민이 딸을 전적으로 믿어온 시간들, 딸들을 존중하고 지지해왔던 순간들, 그리고 여전히 딸들에게 보내는 밝고 가볍고 경쾌한 언어들.....

  나는 처음엔 딸들이 착하네, 하는 생각을 하며 들었다. 그런데 계속 듣다보니 자녀들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표현하는 민의 진짜 모습이 보였다. 어느 순간, 울컥 그 마음이 내게로 전해졌다.민의 딸들은 너무 행복했겠다는 생각에 부럽기까지 했다. 나도 민의 딸이 되고 싶은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나는 우리 딸을 온전히 믿어주고 안아주고 존중하는 시간을 보냈던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나는 늘 억울했다. 나는 정말 착한 딸이었는데 왜 우리 딸은 나와 다르지, 그리고 나는 우리 딸에게 최선을 다했는데 왜 이렇게 딸은 내 마음을 몰라주나....

  

  민은 가족끼리 터치가 빠지면 안된다는 말도 했다.

  -아이들과는 터치예요. 터치!

  다 아는 말 같은데 되짚어보니 딸과 최근에 소원했던 것 같았다. 딸을 안고 잔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스킨쉽 보다는 잔소리부터 시작했던 순간들이 스파크처럼 튀어올랐다. 그 잔소리는 또 얼마나 날카로웠던가. 나도 모르게 얼굴이 발개졌다.  


  민과 헤어진 뒤 집으로 돌아와 학교를 마치고 오는 딸을 가만히 안아주었다.

  -우리 강아지, 학교 잘 다녀왔어?

  딸은 갑자기 왜? 하는 표정이었지만 내 손길이 싫지는 않은 듯 했다. 키가 큰 딸이 자기보다 작은 엄마가 안아주니 아기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래, 내가 상처받은 내 감정만 생각하고 너를 한번 더 보려하지 않았구나. 이런 반성도 며칠 갈 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자주자주 안아주어야하는 것, 이것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춘기 아이 키우는 엄마는 억울한 마음을 뒤로하고 또 하나를 다시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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