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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사진의 결론

by 그린토마토

지난 해, 나의 화두 중에 하나는 프로필 사진이었다. 나는 가족사진이 아닌 나만의 독사진을 하나 가지고 싶었다. 프로필 사진을 저렴하게 찍어주는 사진관을 알아본 뒤 3월에 찍겠다고 예약을 했다. 그러다가 살을 빼고 찍겠다며 6월로 예약을 연기했다. 6월에도 살은 별로 빠지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막상 가려니 귀찮았다. 또 몇 개월을 더 미뤘고 아예 사진관에 말해두었다. 찍고 싶을 때 연락하겠다고.


11월 즈음, 프로필 사진이 생각났다. 나는 계약금을 걸어두었기에 안 찍을 순 없었다. 11월에도 몸무게 변화는 없었다. 사진관 기사님은 계약금 걸고 6개월 이내 찍어야하지만 한번 봐준다고 했다. 나는 계약금이 아까워 얼른 사진관을 방문했다. 사진에 대한 생각은 거의 없어졌고 계약금을 날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나는 나름대로 애쓰느라 옷도 골라입고 머리도 손질하고 화장도 하고 갔다. 사진사는 아기 사진을 찍듯이 '호루룩 호룩' 같은 소리를 내며 웃겼다. 나는 애들 돌사진 찍을 때 많이 들었던 사진사의 제스쳐가 민망했지만 덕분에 자연스러운 표정이 연출되었다.

놀랍게도 사진사는 원하는대로 사진을 편집해주었다. 전체적인 몸의 크기부터 얼굴 크기까지. 굳이 다이어트를 하고 찍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원하는대로 얼굴도 줄이고 몸집도 줄였다. 나랑 조금 다르지만 자세히 보면 비슷한 나의 독사진, 프로필 사진이 완성되었다. 뿌듯했다.


나는 가족들이 다 보란듯이 잘 보이는 곳에 액자까지 넣어 프로필 사진을 전시했다. 어젯밤, 아들이 사진을 한참 쳐다봤다.


- 엄마, 내가 엄마 사진 보고 엄마 모습 그려줄까?

- 왜?

- 그냥 그려보고 싶어서.

- 잘 시간인데? 얼른 자야지. 곧 10시야. 성장호르몬 나오는 시간이라고.

- 알았어. 조금만 그릴게.


정작 성장호르몬이 나와야 하는 아들은 늦은 시간까지 그림을 그렸고 성장호르몬이 필요없는 나는 일찍 잠들어버렸다. 속으로 적당히 그리다 말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마주한 거실의 풍경은 씁쓸했다. 거실 한 가운데 벽에 나의 프로필 사진에 나온 옷과 비슷한 왠 아줌마의 초상화가 세워져 있었다. 프로필 사진으로 애써 몸도 얼굴도 다 줄였는데 아들 그림 속의 나는 다시 불어나 있었다. 눈도 짝짝이, 심지어 입지도 않은 빨간바지까지 입혀놨다.


나는 무척 실망스러웠지만 아들의 정성을 생각해 그냥 웃고 넘겼다. 우리 아들이 그림을 잘 그리는 건지 못 그리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아들이 나를 사랑하는 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속의 나는 정말 푸근한 모습 그 자체였다. 아들의 눈에 내가 그렇게 비친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아들이 내 말을 안 듣는 단점도 있지만 말이다.


아들 덕분에 내 프로필 사진은 재탄생했다. 프로필 사진의 결론은 '원래 모습대로 살아라' 였다. 편집한 프로필 사진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아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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