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의 창시자 주희가 태어나다
송나라(宋)의 휘주(徽州)에서 아버지 위재(韋齋) 주송(朱松)과 어머니 축씨(祝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지혜가 총명하고 근엄한데다가 말수가 적어 주로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어려서는 부친의 지기인 호적계(胡籍溪)·유백수(劉白水)·유병산(劉屛山)에게 사사(師事)하였고 과거급제 이후에는 주돈이와 정호 등의 학통을 이은 연평(延平) 이동(李侗)을 찾아가 직접 사사를 받았으며, 정명도, 정이천 형제의 사상을 학습하며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이후 유교 경전을 탐독하고 풀이 주석을 교정하고 공자, 맹자 등의 사상을 풀이하였는데 이것이 하나의 학문이 되어 성리학으로 발전하였다.
19세의 나이에 과거 시험에 등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관직에 나아가서는 황제에게 요순(堯舜)의 덕치(德治)를 설명하며 봉사(封事)와 상서(上書)로 누누히 수차례 개진하였으나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한탁주 등 관료들의 미움을 받아 만년에는 모함을 당하고 기인으로 몰리는 등 많은 고생을 겪었다.
그의 학문을 성리학(性理學) 또는 주자학(朱子學)이라 하는데, 고대 경전의 주해 외에 유교의 주류인 이기심성(理氣心性), 거경궁리(居敬窮理)의 학설을 제창하여 그 학문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저서로는 주역본의계몽(周易本義啓蒙)·시집전(詩集傳)·대학중용장구혹문(大學中庸章句或問)·논어맹자집주(論語孟子集註)가 있고, 소편(所編)에는 논맹집의(論孟集義)·중용집략(中庸集略)·효경간오(孝經刊誤)·소학서(小學書)·통감강목(通鑑綱目)·근사록(近思錄)·주자집(朱子集) 등을 남겼다.
1200년에 졸하니 사망당시 향년 71세였다. 송 영종(寧宗) 때 문공(文公)의 시호가 내려지고 송 이종(理宗) 연간에 태사(太師)로 추증되었으며 신국공(信國公)으로 추봉되었다가 다시 휘국공(徽國公)으로 고쳐 봉해졌고 문묘에 배향 종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