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군, 대장정을 시작하다
세계 역사적으로 패배가 결국에는 승리를 이룬 아이러니의 대명사. 당시 중국 국민당은 쑨원이 이끌고 있었는데, 이때에는 반일항전이 중요하여 국공합작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쑨원이 사망하고 반일보다 반공 성향이 강한 장제스가 정권을 잡자 공산당 제압에 들어간다. 이에 공산당은 난창, 추수, 광저우 등에서 봉기를 일으켰으나 모두다 대패해버리고 만다. 그만큼 국민당의 전력이 공산당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이러한 패전속에서 중국 공산당은 1931년에 소련의 지원을 받아 마오쩌뚱과 주더에 의해서 중국 장시성에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을 설립한다. 그리고, 이 지역은 장제스의 탄압과 압박을 피해 도망쳐 온 공산당과 급진주의자들의 보호처가 되었다. 이를 장제스가 가만 놔둘 리가 없었고 자그마치 1933년까지 대규모 공산당 토벌전을 벌였으나 공산당은 게릴라 전술로 이를 무마시켰다.
그러나 장시 소비에트로 피난해온 중국공산당 고위급들이 많아지면서 일개 농민군 지도자에 불과한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는데 실패하여 낙향한 상태였다) 마오의 지도력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특히 옛 소련에서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공부하고 돌아온 "28인의 볼셰비키" 그룹은 코민테른의 지지를 받아 당권을 장악하였고, 그들은 유격전을 중심으로 한 마오의 전략을 버리고 정규전을 결정했다.
그런데, 게릴라전을 버리고 국민당과 정규전을 결정한 지도부의 전략은 대참사로 끝나고 만다. 당연한 것이 군사력에서 공산군이 우세하지가 않은데 이를 국민당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무모할 수 밖에 없었고 그대로 맞붙었다가 모두가 몰살당하는 대참패로 끝나고 공산당은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의 근거지였던 장시성을 버리고 탈출을 해야했다. 그날이 1937년 10월 16일이었고, 동지들과 미래를 계획하고 원정길을 모색한 후 길을 나선 날이 1937년 10월 17일이었다. 그런데, 이 원정이 2년이나 걸릴 줄은 아무도 몰랐었으며, 이 2년이라는 긴 시간의 대장정 동안 마오쩌뚱의 공산당 이념은 중국 곳곳에 널리 퍼지기 시작해 국민적 지지를 얻는 쾌거를 이루어 2년 후 장제스의 국민당을 몰아내고 중국 전권을 잡을 수 있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란 것을 보여준 전형적인 사건이 바로 ‘대장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