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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오늘사건] 1972년 12월 27일

박정희, 유신헌법이 시행되다

by 나그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1963년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는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여러분께 다시는 나를 찍어달라고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하였는데, 이에 상대 후보였던 김대중은 '박정희가 헌법을 고쳐 선거가 필요없는 총통이 되려 한다'고 주장하였다.

김대중을 가까스로 누르고 대통령에 3선된 박정희는 국회를 해산한 후 정당 및 정치활동의 중지 등 헌법의 일부 기능을 정지시키고,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이에 따라 계엄사령부가 설치되었고, 계엄사령부는 포고를 통하여 정치활동 목적의 옥내외 집회 및 시위를 일절 금지하고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은 사전 검열을 받도록 하며, 대학들을 휴교시켰다.


이후 한태연, 갈봉근 등의 학자들과 김기춘과 같은 젊은 검사들이 만든 헌법개정안(이른바 유신헌법안)이 10월 27일에 대통령 특별선언에 따라 국회의 권한을 대행하게 한 비상국무회의에서 의결·공고되었고, 11월 21일에 국민투표에 부쳐져 투표율 91.9%, 찬성 91.5%로 확정되어 12월 27일에 공포되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대통령 직선제의 폐지 및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 선거.

2. 국회의원의 1/3을 대통령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

3. 대통령에게 헌법 효력까지도 일시 정지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권 부여.

4. 국회 해산권 및 모든 법관 임명권을 대통령이 갖도록 하여 대통령이 3권 위에 군림할 수 있도록 보장.

5. 대통령의 임기를 6년으로 연장하고, 연임 제한을 철폐하여 종신 집권을 가능케 함.


소위 '한국적 민주주의'를 표방한 유신 체제는 전형적인 유사 민주주의 또는 장식적 입헌주의 체제의 성격이 강하다는 의혹이 많으며, 유신 체제는 평양의 김일성 독재체제와 유사한 민주주의를 사칭한 전체주의 독재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이 많다.


대통령 1인이 행정, 입법, 사법부를 모두 장악하면서 삼권분립은 붕괴되었고, 무제한의 연임허용과 관제기구나 다름없는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으로 종신집권을 가능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법관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함으로써 사법권의 독립은 말살되었다. 국민은 대통령선거권을 빼앗기고, 대통령은 헌법 효력까지 정지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권을 이용해 언제든지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행위를 금지·처벌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은 본질적으로 침해되었다.


김대중이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예견한 박정희식 총통제(總統制), 즉 유신체제는 긴급조치권과 헌법을 초월한 경찰, 군, 정보기관의 공권력으로 유지된 1인 전제정치체제였으며, 매카시즘을 뛰어넘는 반공주의였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식 파시스트의 탄생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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