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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그네 Jun 28. 2024

[역사속의오늘사건] 1914년 6월 28일

1차 대전의 원인인 사라예보 사건이 발발하다

유럽 힘의 균형을 위한 정치 외교적 동맹인 '신성 동맹'

19세기 유럽 강대국들은 유럽 전역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며 그 결과 1900년에는 복잡한 정치, 군사적 동맹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 동맹은 1815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신성 동맹으로부터 시작했다. 

독일을 신흥 강대국으로 자리매김 하게 된 '보불전쟁'

1871년 보불전쟁에서 독일이 승리하여 독일이 통일한 이후, 산업 및 경제력이 급상승하게 되었다. 1890년대 중반부터 빌헬름 2세는 중요한 경제 자원을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가 지휘하는 독일 제국해군에 투자하여 영국 해군과 해군 군비 경쟁을 하게 되었다.

유럽의 위기를 불러온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과거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1878년 이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점령한 이후 1908년부터 1909년까지 보스니아 위기가 도래하게 되었다. 이 점령으로 세르비아 왕국 및 그 국가의 후원자인 범슬라브주의 동방 정교회의 러시아 제국을 화나게 했다. 

1,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알린 1,2차 발칸반도 전쟁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행보는 이미 "유럽의 화약고"로 널리 알려진 발칸반도의 균형을 붕괴시켜 평화 협정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1, 2차 발칸 전쟁으로 발칸반도의 정세는 더욱 불안정해졌다.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세르비아의 흑수단이 지원하는 청년 보스니아 민족주의 단체의 암살단 6명은 대공의 차량 행렬이 지나가는 거리에 서 있었다. 

세르비아 흑수단 일원인 프란치프가 페르디난트 부부를 암살한 '사라예보 사건'

대공의 차가 지나갈때 수류탄을 던졌지만 실패하여 근처의 군중 몇몇이 부상을 입었고,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차는 계속 움직일 수 있었다. 약 한시간 후, 페르디난트 대공이 사라예보 병원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 길을 잘못 들려 우연히 암살단 중 1명인 프린치프가 서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프린치프는 권총을 발사해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그의 아내 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를 암살하는 데 성공한다. 

'사라예보 사건' 직후 당시 상황이 담긴 사진

사라예보 암살 사건에 대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의 관리(특히 검은 손 조직의 임원들)들이 이 사건과 관련되었다고 판단하고 보스니아 내에서 세르비아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세르비아에게 의도적으로 전쟁을 자극할 10가지 요구 사항으로 구성된 7월 최후통첩을 보냈다. 세르비아가 10가지 요구사항 중 8가지만 수락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914년 7월 28일 전쟁을 선포하며 1차 대전이 시작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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