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통치 받던 홍콩,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되다
영국은 청나라와의 무역 불균형에 대처하기 위해 다량의 인도산 아편을 중국에 팔았다. 마약 문제에 직면한 당시 청나라 관리들은 아편 무역을 중단시키기 위해 훨씬 더 공격적인 행동을 취했다. 당시 도광제는 아편을 합법화하고 과세하자는 제안을 거절했고, 1839년에는 판무관 임칙서에게 아편 무역을 근절하라 지시하였다. 임칙서는 아편 창고를 파괴하고 아편과 관련된 모든 해외 무역을 중단시켰고, 대영제국군은 이에 대응하여 제1차 아편 전쟁을 일으켰다.
청은 전쟁 초기에 패배를 인정했고 천비 협정에서 홍콩 섬을 양도했다. 그러나, 협정을 맺은 양국은 내용에 만족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협정을 비준하지 않았다. 1년이 넘는 적대 분위기 이후, 홍콩 섬은 1842년 8월 29일 난징 조약에 따라 당시 대영 제국에 정식으로 양도되었다.
홍콩은 1950년대에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가장 먼저 산업화되었다.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홍콩 식민정부는 사회 기반 시설과 공공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개혁을 시작했다. 공공 임대 주택 사업, ICAC 그리고 홍콩 지하철은 모두 안전한 주거, 공정한 행정 서비스 그리고 보다 안정적인 교통 수단을 제공하기 위해 전후 수십년간 진행되었다.
당시 홍콩의 제조 경쟁력은 증가하는 노동력과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점차 감소했으나, 서비스 산업 중심의 경제로 성공적으로 전환했다. 1990년대 초 홍콩은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이자 해상 운송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홍콩의 지위에 대해 영국은 1979년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외교 협상에 돌입하였고, 마침내 1984년에 홍콩 반환 협정을 체결했다. 영국은 1997년에 홍콩의 전체 식민지를 중화인민공화국에 이양하기로 합의했고 중국 공산당은 홍콩의 경제적, 정치적 시스템을 반환 후 50년 동안 보장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홍콩 이양에 임박했던 당시 홍콩 국민들은 민권, 법치주의, 그리고 삶의 질 등이 침해될 것을 우려, 당시 홍콩 내의 대규모 이민을 일으켰다.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총 5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주 기간의 절정기 동안 홍콩을 떠났다. 홍콩은 1997년 7월 1일 자정을 기점으로 이양되었고, 156년의 영국 통치가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