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 결과,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되다
청일 전쟁은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1894년 7월 25일부터 1895년 4월까지 벌인 전쟁이다. 중국에서는 중일갑오전쟁(中日甲午戰爭), 일본에서는 일청전쟁(日清戦争), 서양에서는 제1차 중일전쟁(First Sino-Japanese War)이라고 부른다.
청일전쟁은 근대화를 향한 두 나라의 개혁이 맞붙은 전쟁으로 청나라는 양무운동,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라는 근대화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양무운동은 중체서용이라는 방식으로 근대화를 추구했는데, 서양의 기술을 사용하되 정신은 중국 것을 지키자는 방식으로, 이러한 근대화는 조선의 동도서기론에 영향을 주었다. 양무운동의 중심인물은 리홍장이었다.
메이지 유신은 문명개화라는 방식으로 근대화를 추구했는데, 기존 일본의 모든 방식을 버리고 서양식 정신과 서양의 기술로 일본을 개조하자는 것으로 문명개화론을 주장한 이는 후쿠자와 유키치로 갑신정변의 수장 김옥균의 스승이었다.
중체서용과 문명개화가 격돌했던 청일전쟁은 일본이 승리를 하며 중체서용, 동도서기론자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중국은 캉유웨이가 등장하면서 메이지유신을 본따서 변법자강운동으로 방향성을 바꾸게 된다.
청과 일본이 청일전쟁의 결과에 대한 조약을 맺기 위한 장소로 택한 곳이 시모노세키
일본 혼슈의 시모노세키는 도쿄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이기에 조약 체결 장소로 더없이 좋았다.
1895년 3월 19일 청의 전권대신 리훙장이 도착하였고, 협상 장소는 간몬대교 인근의 슌반로우(春帆樓)라는 요정이었다. 지금은 일청강화기념관으로 바뀌었다.
일본의 대표는 조슈 번 출신의 이토 히로부미였다. 리홍장과 이토 히로부미는 1885년 톈진에서 조약을 체결할 때 각국 대표였기때문에 이미 아는 사이. 텐진조약은 갑신정변 결과로 청일이 맺은 조약이다.
1895년 4월 17일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로 인하여 일본은 청나라가 조선에 대해 가지는 권리를 모두 박탈시켜 대륙 진출의 가장 큰 걸림돌이던 청나라를 효과적으로 배제하였다. 패전국인 청나라는 이 조약으로 인해, 동아시아 패권 다툼에서 일본에 밀리게 되었다. 배상금 2억 냥을 일본에 지불하였으며, 랴오둥 반도와 타이완 섬, 펑후 제도 등을 할양하였으며, 일본의 통상상의 특권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6일뒤 러시아가 독일, 프랑스를 끌여들여 삼국간섭으로 저지시키게 되고, 러시아의 힘을 알게 된 조선에는 친러파가 득세하는 시대 변혁을 맞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