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상 유일무이한 장기간 휴전이 시작되다
이승만은 1951년 6월 9일 휴전의 결사반대를 선언하였고 6월 27일 소련의 휴전안을 거부하였다. 1951년 7월에 휴전 회담이 개시된 후 세계 전쟁 사상 처음 보는 제한 전쟁(휴전이 되면 각기 점령 지역에서 국경이 정해지는 조건으로 싸우는 전쟁)이 벌어졌다.
한국 전쟁 중 2년 동안 이렇다 한 성과를 올리지 못한 미국은 현상유지 차원에서 휴전협정을 추진하였다. 이에 이승만은 분단 상태에서의 휴전은 한국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주장하며, “민족국가로 생존하기 위해 단독으로라도 계속해 싸워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철저한 반공주의를 지향하였던 이승만은 북진을 고집하며 휴전에 협조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중화인민공화국에 대응하여 좀 더 강력한 방법이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미국이 폭격을 하는데 망설이는 것에 대해 화를 내곤 하였다.
1953년 5월 30일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에게 보낸 친서에서 다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요구하였다. 이승만은 휴전협정을 방해할 목적으로 수감된 포로 중 반공포로를 대규모로 석방했다. 전격적인 반공포로 석방에 격분한 미국은 이승만을 제거할 작전을 계획한다.
주로 개성과 금강산에 이르는 곳에서 전투가 계속되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소련을 통해 휴전을 제의하였고, 유엔군 측의 승인으로 휴전이 성립되었다. 1953년 7월 27일에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3년 1개월 만에 한국 전쟁은 휴전으로 매듭이 지어졌으며,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장기간 휴전상태가 현재까지 그 효력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