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제2성전시대가 끝나다.
이 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필요한데 이를 살짝 가미하고자 한다. 이스라엘 왕국은 우리가 십계로 잘 아는 모세의 엑소더스로부터 시작된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판관 사무엘에 의해서 사울이 왕이 되어 나라를 세우니 이 나라가 이스라엘 왕국이다. 뒷날의 이스라엘 왕국과 구분하기 위해 연합 이스라엘 왕국이라고 부른다.
사무엘과 사울은 나중에 척을 지게 되고 사무엘은 베들레헴에서 다윗을 새 왕으로 세운다. 이에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아들과 함께 사망하고 만다. 이후 2년간 다윗과 사울의 아들들 간의 권력 투쟁을 벌인 끝에 다윗이 왕위에 오른다. 다윗의 사후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설하게 된다
솔로몬 왕의 아들 르하브암 시기에 이르러 나라가 분열이 되는데 여호와를 저버린 르하브암을 믿는 파와 이집트에서 돌아온 예로보암을 지지하는 파로 나뉘는데 12지파 중 10지파가 예로보암을 지지하여 세력이 강성해졌기에 예로보암을 새 왕으로 이스라엘을 세우니 북이스라엘왕국 혹은 분열 이스라엘 왕국이라 부르며, 르하브암을 지지하는 2지파는 남부로 이동하여 나라를 세우니 남유다 왕국이다.
북이스라엘 왕국은 앗시리아에, 남유다왕국은 신바빌로니아에 각기 망하면서 성서적으로 구약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이 시기를 제1성전시대라 부른다.
앗시리아, 신바빌로니아가 페르시에아에 의해 멸망당하면서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돌아와 터전을 마련하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다시 정복되었다가 대왕 사후 유대인들의 왕국 하스몬 왕조가 세워진다. 이후 로마의 지배를 받는데 이 시기를 제2 성전시대라고 부른다.
로마의 지배를 받는 동안 유대인들은 과중한 세금으로 인해서 로마에 대한 증오심이 커켜갔으며, 팔레스타인 내에 이방인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그들은 유대인보다 더 많은 권익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이를 자기들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었던 이들은 점차 이방인의 압제에서 유대를 구해줄 메시야 사상이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와 함께 로마는 빈번한 황제교체로 정치적 혼란이 가중된 시기였다. 로마의 대표적 폭군인 칼리굴라가 황제로 군림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나 칼리굴라는 스스로를 신이라 지칭하며 각지에 자신의 조각과 성전을 짓도록 하므로써 반로마 감정이 가중되고 있던 유대인들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된다.
유대-로마전쟁은 모든 사안이 그렇듯이 카이사레아의 성전 앞에서 제사를 드리던 그리스인과 사소한 다툼에서 발발되었다. 이를 중재해야하는 로마인은 중재를 하지 않고 이에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군을 급습하며 전쟁은 시작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폭동은 66년 7월 예루살렘에서 로마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폭도들을 피해 왕궁으로 도주하였던 로마 수비대는 투항하면 살려주겠다는 제안에 투항하지만 모두 학살당하고 만다. 그리고 온건적 입장의 대제사장 역시도 급진적 폭도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만다.
이에 로마황제 네로는 시리아의 로마총독 케스티우스 갈루스를 파견하고, 케스티우스가 반란 폭도들을 진압하는 와중에 예루살렘 정복에는 실패하고는 귀국하여 사망한다. 네로는 후임으로 베스파시아누스를 파견하는데 이가 누구냐면 후대 로마의 혼란기를 잠재우고 팍스로마나의 시대를 여는 5현제의 1대 황제가 된 인물 되시겠다.
여튼 지략과 전략으로 반란을 진압한 베스파시아누스는 반란군 사령관 요셉 벤 마티디아스를 포로로 잡고 그를 중재자로 하여 로마와 유대간의 공존을 모색하게 하여 무리없이 잘 다스리다가 69년 황제로 추대되어 로마로 떠난다. 그의 후임으로 그의 아들 티도가 장군이 되어 부친이 이루지 못한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성전을 파괴하니 이때가 70년 8월 4일 이었다. 이후 3년간 자잘한 반란들이 있었으나 바로 진압되고 이후 2000년의 지난한 방랑의 역사가 시작되는 디아스포라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