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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사] 026. 후기 바로크 13 – 독일

by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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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음악이 정점에 달했던 후기 바로크 시대, 독일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화려한 양식과 토속적인 음악 전통을 독자적인 음악성으로 완벽하게 융합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S. Bach)와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G.P. Telemann)을 중심으로 유럽 음악의 최고봉을 주도했다.


1. 종교 음악: 감정의 극대화와 형식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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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바로크 독일 종교 음악의 핵심은 칸타타의 개혁이었다. 함부르크의 신학자 에르트만 노이마이스터는 교회력에 맞춘 시와 성경 구절, 코랄을 결합하고 이탈리아 오페라의 구성 요소인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를 도입하여 새로운 칸타타 형식을 정의했다. 이러한 개혁적인 형식은 라이프치히의 바흐, 함부르크의 텔레만 등 저명한 작곡가들에게 채택되었다.


특히 이들은 감정 이론(Affekt Doctrine)을 치밀하게 적용했다. 바흐는 칸타타와 수난곡에서 특정 음형과 대위법적 구조를 활용하여 가사의 정서적 의미를 극대화했다. 시인 바르톨트 하인리히 브로케스의 수난곡 대본은 당대 많은 작곡가에게 영감을 주며 이 장르의 대중적 성공을 이끌었다.


2. 기악 음악: 세속 무대로의 확장

협주곡 장르에서 독일 음악가들은 이탈리아 베네치아 양식(비발디)을 본보기로 삼았으나, 여기에 독일 특유의 엄격한 대위법과 정교한 관현악법을 더했다.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한 게오르크 피젠델은 이탈리아에서 사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협주곡 발전을 주도했으며, 플루트, 오보에, 호른 파트 등을 도입하여 이후 초기 교향곡의 악기법과 편성의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크리스토프 그라우프너 등은 오보에 다모레 같은 독일 악기를 활용하여 독특한 음색을 추구했다.


교회와 궁정을 넘어, 라이프치히의 콜레기움 무지쿰(Collegium Musicum)과 같은 시민 단체는 커피 하우스 등 공공 장소에서 세속 음악 콘서트를 주최했다. 바흐 역시 이 단체를 이끌며 다양한 기악 및 세속 칸타타를 작곡하고 연주하며 음악의 활동 영역을 확장했다.


3. 건반 음악: 바흐의 통합적 완성

후기 바로크 독일 건반 음악은 단연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 의해 정점을 찍었다.

바흐는 이탈리아 양식의 명료함과 프랑스 양식의 우아함을 완벽하게 통합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이탈리아 협주곡》이나 《프랑스 서곡》 같은 작품에서 이러한 융합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의 작품은 바로크 시대 대위법적 사고를 집대성했으며, 평균율(Well-Tempered) 체계의 실용성을 확고히 입증하는 역사적 유산으로 남았다. 또한 통주저음(Basso Continuo) 파트에서도 저음 악기들의 파트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밀도 있는 선율을 부여하여 음악 구조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다.


4. 오페라와 과도기의 역할

독일 오페라는 이탈리아에 비해 발전 속도가 느렸으나, 요한 아돌프 하세와 요한 다비드 하이니헨 같은 작곡가들이 뛰어난 독일식 오페라 세리아를 남겼다. 특히 하세는 당대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 작곡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한편,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은 바흐의 복잡한 대위법보다 선율적이고 청중 친화적인 갈랑 양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바로크에서 고전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겼으며, 음악의 상업적 확산에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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