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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 Oct 16. 2024

늦깎이 도전

우월성을 추구하는 것

쉰 살의 교생 선생님

늦은 나이에 학업을 시작하여 나이 쉰을 앞둔 나이에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낮에는 근무하고 밤에는 대학원에 가서 이틀은 전공수업을 듣고 하루는 교직과목을 들었다. 하루하루 부족한 잠을 쫓으며 집안일과 직장 일 대학원 학업까지 하느라 대상 포진에 걸리면서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갔다. 그래도 중도에 그만둘 수 없어서 논문 학기를 앞두고 교생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교생실습 학교를 찾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유는 나이가 많고 비교과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래도 어렵사리 겨우겨우 교생 할 학교를 찾아서 겨우 교생실습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첫날 교생실습 학교인 남녀 공학 중학교에 도착하니, 나를 제외한 여섯 명의 젊은 교생선생님들이 있었다. 남학생 넷 여학생 둘 나를 포함하니 여자 셋 남자 넷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배정받은 반으로 안내를 받았다. 나는 2학년 1반으로 배정을 받고 막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아이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우와~~~ 아!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일까?’라며 아이들을 바라보니, 아이들은 적잖이 실망한 얼굴이었다. 알고 보니, 여자 교생이 세 명 오는데 자기네 반에 여자 교생이 온다는 말을 미리 듣고는 좋아하다가 머리가 희끗한 웬 아담한 아줌마가 들어가니 아이들이 이만저만 실망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아이들이 곧 야유하기 일보 직전인 듯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나는 오랫동안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했으니, 아이들의 마음을 얼른 알아채고 짐짓 당당한 듯 어깨를 바로 펴고 활짝 웃으며 아이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여러분 반가워요! 선생님은 이번에 여러분과 함께 한 달 동안 만나게 될 부담임 교생 선생님이에요~ 그런데 여러분들! 이쁘고 젊은 여자 선생님이 아니라서 크게 실망했지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선생님은 한 달 동안 여러분들의 학습 고민, 이성 친구 고민, 친구 관계 고민을 다 들어줄게요!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점심시간마다 선생님한테 오세요. 고민을 들어주고 힘든 마음에 공감해 줄게요! 어때요? 정말 좋을 것 같지 않나요?” 내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일제히 “네~! ” 하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첫 시간의 긴장감과 떨림이 있었지만, 아이들과 화기애애한 인사 나누기가 나를 설레게 했다. 지난 40년간 가슴속에 품어왔던 나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지난 세월을 거슬러 돌아보니, 나는 일찌감치 결혼하고 아이들을 양육하며 꿈에 대해 생각할 엄두조차 못 내고 살았었던 것 같다.

 그때는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키워내는 일만이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꿈을 위해 뒤늦게 학업을 다시 시작한 계기는 뜻밖의 장소에서였다.

 20여 년 전 큰아이가 초등학교 때 여름 방학 직전 학교에서 우연히 보게 된 ‘유네스코 아시아 어린이 그림 축제’ 포스터를 보고 아이의 그림을 응모하게 되었다. 그림을 응모하고 6개월이 지난 어느 3월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하는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유네스코 직원이었다. 나는 순간, 잊고 있었던 그림 응모 사실이 기억났다. 전화 내용은 우리 아이가 이번 대회에서 그랑프리를 받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에 더불어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달해 주었다. 순간, 나는 머리가 멍했다. 그때의 기쁨과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5개월이 지난 8월 중순, 나는 큰아이와 작은아이를 동반하고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가는 일도 처음이라 긴장되고 떨렸는데 아이들도 매한가지로 들뜨면서도 조금은 긴장이 되는지 상기된 얼굴로 나에게 연신 질문하고 또 했다.

 그렇게 도착한 나리타 공항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요코하마로 이동했다. 그림 전시회와 시상식 등 5박 6일의 일정 중 마지막 밤이 되었다. 우리는 도쿄디즈니랜드로 가서 퍼레이드와 불꽃놀이를 보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뒤쪽에서 누군가 갑자기 “아!” 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풀썩 주저앉았다. 나는 너무 놀라서 다가가 보니,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일본인 인솔자 아주머니였다. 통역을 통해 들은 얘기는 우리 일행들이 퍼레이드와 불꽃놀이를 잘 볼 수 있도록 새벽부터 끼니를 굶어가며 습도 높은 더위를 견디며 그 자리를 사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경련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분의 직업은 대기업의 팀장직이며, 이번 행사를 위해서 업무를 진행하고 행사를 지휘하는 일을 맡은 담당자라는 것이다.

 행사 내내 우리 아이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살갑게 챙겨주던 아주머니가 평범한 아주머니가 아닌 대기업의 임원이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다. 그런데도 행사에 참여한 아이들이 좋은 자리에서 퍼레이드와 불꽃놀이를 볼 수 있게 해 주려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나에게는 없는 프로 정신이 너무나 멋지게 보였다. 그 사람은 전문가로서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다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뭔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나는 저 사람보다 훨씬 젊은데, 그동안 내 발끝만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또다시 생각해 보니, 나에게는 아직 젊음이 있다는 사실이 세상을 향해 두려움 없는 한 발을 떼게 된 첫 계기가 되었다.

  개인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은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월성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했다. 아들러의 말처럼 나는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월성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전 나는 교사의 꿈을 본격적으로 실행해 보리라 결심하게 되었다. 학사 편입을 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비록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런 노력으로 지금의 내가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십여 년 전 무지했던 나를 깨우쳐준 그분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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